[만물상] 실종되는 중국인들

안용현 논설위원 2021. 11. 2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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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왼쪽)가 장가오리(오른쪽) 전 중국 부총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이후 실종설에 휘말렸다가 최근 동영상 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EPA, AFP 연합뉴스

1995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6세 소년을 티베트 불교 2인자인 ‘판첸 라마’로 점찍었다. 티베트 전통에 따라 환생한 판첸 라마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이 소년은 곧바로 실종됐다. 달라이 라마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 당국이 어디론가 데려간 것이었다. 국제 인권 단체가 ‘최연소 정치범’으로 부르며 석방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러다 2015년 티베트 자치구 설립 50주년을 맞아 관영 매체는 느닷없이 ‘소년이 잘 지내고 있다’면서 “달라이 라마 때문에 보통 사람으로 살지 못했다”고 했다. 실종 20년 만에 내놓은 것이 ‘남 탓’이었다.

▶2015년 중국 인권변호사 등 250여 명이 무더기로 사라졌다. 당시 왕취안장 변호사는 1000일 넘게 행방불명 됐다가 비공개 재판을 받고 작년에야 출옥했다. 공산당 부패와 암투를 고발하던 홍콩 출판인 5명은 실종 100여 일 만에 홍콩 아닌 중국에서 소재가 확인됐다. 안팡보험·푸싱그룹·밍톈그룹 등 대기업 총수들도 수시로 실종되고 있다. 알리바바 마윈 회장은 100여 일간 행방이 묘연한 적이 있다. 여배우 판빙빙 등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다. 반성문을 쓰거나 TV에 나와 ‘자기 죄’를 자백해야 풀려나는 경우도 있다. ‘실종’을 경험한 인권활동가는 “검은 커튼이 드리운 방에서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채 용변 보는 것조차 감시당했다”고 증언했다.

/일러스트

▶2019년 권력에서 멀어진 리위안차오 전 국가부주석의 자살설이 퍼졌다. 그러자 중국은 리 전 부주석이 발행 날짜가 보이도록 인민일보를 펼쳐 든 사진을 공개해 소문을 잠재웠다. 그런데 보시라이 전 정치국원의 내연녀 설이 돌았던 TV 아나운서가 ‘인체 표본’이 됐다는 괴담에 대해선 지금껏 생존을 증명할 어떤 사진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미투’ 폭로 후 실종설에 휩싸인 테니스 선수 펑솨이(彭帥)의 최근 사진과 동영상을 잇달아 공개했다. “내일이 11월 20일 아니냐”는 대화까지 노출했다. 그런데도 세계여자테니스 협회장은 “그녀 안전을 우려한다”고 했다. 테니스 스타들뿐 아니라 백악관과 유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까지 그녀의 자유와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아는 것이다.

▶코로나 발원지 우한 실태를 전했던 시민 기자가 얼마 전 600여 일 만에 야윈 모습을 드러냈다. 공산당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다가 실종 상태인 중국인은 셀 수도 없다. 누구든 찍히면 사라진다. 미국인이 시진핑 집권기 실종된 중국인 피해를 모아 책을 썼다. 제목이 ‘실종 인민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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