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여권의 장기 집권론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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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부동산, 국가채무, 적폐 청산… 대선은 마지막 文 정부 평가 기회
정치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2017년 여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80%대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게 문재인 정부의 성패(成敗) 기준을 물었더니 지체 없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통령 지지율은 빠질 것이고, 정권에 대한 추문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민주당 정권이 재창출되면 그건 분명한 성공이라는 식이었다. 물론 김대중 정부가 노무현 정부로,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역사가 김대중, 이명박 정부를 성공한 정부로 기록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은 직전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긍정 평가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당시 여권에서 차기로 거론되던 인물은 선두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가 있었고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뒤를 이었다. 탄핵 이후 초토화된 야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호화 진용이었다. ‘20년 집권론’이 나오더니 총선 이후에는 50년, 100년 집권론까지 나왔다. 누가 되면 이래서 좋고, 누가 되면 저래서 좋다는 낙관론이 여권을 지배했다.
권력의 시간은 벚꽃처럼 진다. 박원순, 안희정, 김경수 등 유력 주자들은 민망한 일이나 드루킹 사건으로 레이스에서 탈락했고, 이재명 대선 후보만 사선(死線)에서 돌아왔다. 선거법 위반으로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던 이 후보에게 면죄부를 준 대법관이 훗날 화천대유 고문을 맡게 될지, 화천대유 대주주가 그의 사무실을 들락날락거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정권 재창출을 향한 ‘오징어 게임’의 승자는 이 후보였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문 대통령이나 친문(親文)에 대한 보복이 있다는 말도 돌지만 그저 말뿐이다.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를 상정하면 문 대통령과 친문들의 선택지는 없다. 현재 여권의 지지부진은 대장동 게이트, 경선 후유증 때문이다. 정권 재창출을 문재인 정부 성공 기준으로 본다면 여권은 곧 바위처럼 뭉칠 것이다.
대선은 미래 권력의 선택이면서 집권 정부에 대한 마지막 평가다. 문 대통령은 정말 예측하지 못했던 많은 일을 했다. 여권 인사의 말을 빌리면 “하고 싶은 일은 원 없이 해본 첫 진보 대통령”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필두로 한 소득 주도 성장, 탈원전, 모든 세금 수단을 동원했던 부동산 정책은 ‘문재인 상품’이다. 재정(財政)을 풀어 위로금을 주고 공공 부문 일자리도 수없이 만들었다. 공무원 조직은 공룡이 됐고, 내년도 국가 채무는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는다. 북한 지도자가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도록 중재했다. 전직 대통령 2명을 구속했고, 주변 인물들이 적폐 청산의 제단(祭壇)에 바쳐졌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총선에서는 선물을, 지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선 레드카드를 받았다. 떠나는 정부 입장에서도 최종 성적표가 궁금할 것이다. 그 기회가 내년 3월 대선이다. 민주당은 “이 후보가 당선돼도 정권 교체”라는 주장을 하고, 이 후보도 정권 교체 여론에 ‘탈(脫)민주당화’에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차별화에 나선다고 한들, 여당 후보의 당선이 정권 교체가 될 순 없다.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 교체냐 둘 중 하나만 있을 뿐이다. 정권 재창출은 적폐 청산, 재정 확장, 공공 부문 확대, 부동산 정책의 연장을 의미한다.
여야 대선 후보의 비호감도가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정말 많은 일을 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최종 평가를 역사가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 정치의 시간과 달리 역사의 시간은 길고 두껍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최종 성적표는 대선 다음 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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