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톡] 여경 논란과 젠더 갈등, 그 밑바닥에 있는 것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2021. 11.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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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빌라에서 일어난 흉기 난동과 여경의 현장 ‘도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이 비극적 사건은 지속적으로 온라인에서 논쟁 대상이 되었던 ‘여경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일러스트=김성규

한쪽에서는 ‘여경은 육체적 능력이 부족하고 현장 근무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며 여경 증원은 치안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반대쪽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경을 무시하는 것은 전형적 여성 혐오이며, 경찰 공권력 행사의 범위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반박한다. 이 논쟁은 2년 전에 불붙었던 속칭 ‘대림동 여경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에도 여경이 주취 난동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고 시민에게 도움을 청하는 영상이 유포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주요 언론과 정치권 모두가 반응할 정도로 여경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인천 사건을 둘러싼 지금의 논쟁은 당시 불거진 논쟁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발생한 것이다.

여경 논란 자체도 지난 수년간 있었던 온라인 젠더 갈등의 맥락 속에 있다. 2018년에 있었던 ‘곰탕집 성추행’ 논란이나, ‘이수역 폭행 사건’과 마찬가지다. 사건이 발생하면, 인터넷상에서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커뮤니티 간에 싸움이 전개된다. 군중은 사건을 자신들의 입장에 맞게끔 재구성하고자 관련 자료를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추가적인 증거를 찾아내며, 상대방의 반박 논리에 대한 재반박 논리를 찾고자 골몰한다. 여기에 이슈 전문 인플루언서들, 인터넷 용어로 ‘사이버 레커’라는 이들이 관련 콘텐츠를 올리면 상당수 대중에게도 논쟁 구도가 확산된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사건들은 결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 증오만을 남겨둔 채 흐지부지된다. 그리고 새로운 사건이 등장하여 같은 흐름이 반복된다. 이것이 짧게는 지난 5년간 폭발했던 온라인 젠더 전쟁의 구도였다.

최근 온라인 남녀 갈등에 관해서 여러 사람과 대화하며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거 다 먹고살기가 팍팍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져서 그런 것 아닌가요?”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자기 파이를 지키려고 싸우는 것 아닐까요?” 정말 그럴까. 나는 오히려 “젠더 갈등을 촉발한 사건들을 보면 ‘먹고사는 문제’랑 전혀 관련 없는 이슈가 대다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번 인천 여경 논란을 포함해,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남녀 갈등은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 남성 혹은 여성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2021년 한 해에 있었던 젠더 갈등 사례를 보면 다 이런 식이다. AI 챗봇 이루다, 아이돌을 대상으로 쓰는 팬픽인 알페스, 인터넷 방송인 보겸의 인사말 ‘보이루’를 둘러싼 갑론을박, 남성 혐오라는 특정 단어와 제스처에 대한 비난…. 여기서 ‘먹고사는 문제’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온라인에서 폭발하는 청년층의 젠더 갈등은, 취업이나 주거 등 계량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다루는 고전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 특히 정체성을 둘러싼 새로운 문제라고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물론 경제와 문화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 영역은 독립적이다. 순수히 경제적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저 수많은 갈등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경제적 문제보다 문화와 정체성 문제가 훨씬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경제는 자원 배분을 조정하며 타협을 끌어낼 수 있지만, 정체성에는 타협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열거한 저런 문제에서 건전한 타협과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치가 단기간에 이 꼬이고 꼬인 상황을 풀어갈 길은 마땅히 없어 보인다. 그러면 그 와중에도 그나마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마 이 갈등이 정확히 어떤 모습을 하고 무엇을 가지고 벌어지는지 인지하는 것 아닐까. 올바른 질문이 올바른 답을 즉시 도출해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잘못된 답을 피하는 데는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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