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기자들, 왜 남의 집을 뒤졌나
지난 6월 미국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1위 주자인 에릭 애덤스 후보의 집에 기자 수십명이 들이닥쳤다. 현직 뉴욕시 브루클린 구청장이자 시장 후보로 나선 애덤스가 사실은 브루클린의 비좁고 낡은 저층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으며, 허드슨강 건너 주(州)가 다른 뉴저지 포트리의 고층 아파트에서 여자 친구와 동거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애덤스가 코로나 팬데믹 초기 뉴욕시를 잠시 떠나 살던 다른 후보를 “뉴욕에 안 살면서 무슨 뉴욕시장을 하느냐”고 비난한 적 있어 ‘내로남불’ 논란까지 일었다.
애덤스 후보는 의혹을 최초 보도한 언론사를 포함, 여러 매체를 불러 “브루클린 집을 공개할 테니 직접 확인하라”고 했다. 기자들은 집에 사람 산 흔적이 있는지 찬장 속 컵까지 뒤집어봤다. 당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가 쓴 기사를 읽다 보니, 초년 기자일 때 남대문 식당에서 뚝배기 깨진 사건을 하나하나 따지며 취재하던 일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침대 위 이불에 적당히 구김은 있었는데 베갯잇이 너무 깨끗해 이상했다” “옷장에 양복 몇 벌과 회색 티셔츠가 걸려 있었지만 언제 입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아무래도 애덤스가 ‘연출’한 의혹이 있다고 여겼는지, 언론들은 그의 브루클린 아파트와 동거녀 명의 뉴저지 아파트에 대한 납세 내역,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는 교량 통과비 내역 제출까지 요구했다. 일부 매체는 애덤스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돼 11월 뉴욕시장에 당선된 뒤에도 그의 집 앞에서 2박 3일 주야로 감시하다 “애덤스가 불법 주차한 탓에 새벽에 견인차가 출동해 교통체증을 유발했다”는 예상 밖 ‘특종’을 건지기도 했다.
뉴욕 기자들이 집요하게 달려드는 이유는 애덤스를 개인적으로 미워해서가 아니다. 고위 공직자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권력을 쥐고 국민의 혈세를 쓰는 자리에 있는 만큼 강도 높은 검증과 감시를 받아야 한다. 무슨 거짓말을 하는지, 왜 하는지, 들통났을 때 수습은 어떻게 하는지, 모든 게 국민에겐 중요한 정보다. 그리고 그 작업은 사소한 일이라도 의심하도록 훈련을 받은 기자들이 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뉴욕의 코로나 방역 상황을 매일 브리핑해 영웅 대접을 받은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가 뒤에선 직원 수십명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여비서의 입을 통해 처음 나오자, 뉴욕의 주요 매체에는 시민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동안 뭘 했느냐”는 비판이다. 언론도 정치인의 쇼에 정신이 팔리면 권력 감시가 느슨해질 수 있다. 권력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지 않는 기자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강성 지지자들더러 ‘자칭 언론’이 돼달라는 주문까지 한다면, 민주주의 하지 말자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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