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주의 아웃룩] 반도체 해외 생산 늘고 에너지 수급 불안.. 원화 가치가 흔들린다

김학주 한동대 교수 2021. 11.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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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 테러의 배경은 아직도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원인 분석도 있다. 2001년 초 이미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접촉하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에 매장된 석유로 접근하기 위한 교두보 마련 때문이었다.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 매장된 석유는 걸프 지역 매장량의 3분의 1에 달했으므로 미국이 이 지역을 장악하지 않으면 석유 패권에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 이 국가들은 소련 연방에서 떨어져 나온 지역이므로 여기서 통제력을 갖고 있었던 러시아는 미국의 이런 오지랖이 불쾌했을 것이다. 그것이 9·11의 도화선이었거나 아프가니스탄 과격 분자들이 미국과 협상 중에 화가 났던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9·11 테러 이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 20년간 주둔했다. 보복이 명분이었지만 원래 의도했던 석유 패권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군이 올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유는 에너지 패권이 석유에서 전기로 넘어가고 있고, 미국 내 셰일 오일도 채굴되므로 큰 비용을 지불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점거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미군은 지난 8월 콩고 내전에 참여했다. 콩고는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코발트 생산의 70%, 매장량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석유를 포기한 반면 미래 에너지의 중심인 배터리를 선택한 셈이다. 지난 100년 인류는 환경 파괴적인 에너지를 사용하며 무분별한 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 에너지가 성장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패권 다툼은 거세지고, 그 가격도 출렁일 수 있다.

사실 아프리카는 중국이 먼저 공을 들여 접촉했던 지역이다. 그런데 미국이 친환경으로 급선회하면서, 태양광발전에 유리하고 배터리 관련 희귀 금속 매장량이 풍부한 아프리카 공략에 나서고 있다. 여기서 9·11 테러와 같은 갈등이 불거질지도 모른다. 그만큼 에너지 가격에 불확실성이 있다는 의미다.

최근 일본의 엔화는 약세를 보였다. 코로나 쇼크가 마무리되어 가며 미국이 금리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로 인해 일본을 떠나는 자금이 늘기도 했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경상수지 악화에 대한 우려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같은 고민을 해야 하는 처지다. 2018년 한국의 에너지 수입량은 전체 수입의 27.3%를 차지했다. 그런데 한국, 일본 모두 신재생 발전에 적합하지 않아 친환경 에너지가 보편화될수록 에너지 수입 부담은 가중될 것이다. 원자력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말이다.

삼성전자 주가 올라도 원화 가치 떨어질 수도

성장이 제한된 상황에서 모든 나라가 안보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에너지 이외에 안보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반도체다. 미래 패권의 상징인 데이터를 관리함에 있어 반도체가 핵심 소재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파운드리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을 원하는 미국의 요구 때문이다. 기존 메모리 시설의 이전까지 요구할 수도 있다. 일본도 대만의 반도체 업체인 TSMC에 일본 내 생산 시설을 원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이제는 노광 장비 없이는 생산이 어려운데 네덜란드의 ASML이 독점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ASML에 그 장비를 중국에 팔지 못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대만의 TSMC를 강점할 수도 있다. 대만에서 미국과 중국 간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극초음속 발사체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의 요격 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무기다. 그렇다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이 쉽게 개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디지털 설루션이 확산되며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패권 다툼으로 공급에 차질이 이어지면 삼성전자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생산이 해외에서 이뤄질수록 수출은 줄어든다. 한국의 수출 가운데 20%가량을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반도체 가격은 올라도 원화 가치는 떨어질 수 있다. 그럴수록 한국의 수입 물가가 오르며 서민들에게 짐이 된다.

규제 완화는 역부족… 신성장 인프라 절실

아베노믹스가 처음 소개됐을 때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일본 문제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일본은 사람뿐 아니라 기업도 늙었다. 그래서 기업들에 역량이 있음에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보다 상호 주 보유 등 경영권 확보에 골몰하며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다. 아베는 여기에 칼을 대고 싶었지만 개혁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만큼 늙은 일본을 깨우기 어려웠다. 그런데 한국은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나라다.

늙어 소비가 저조한 곳에서는 투자 수요가 부족하다. 돈은 투자될 곳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며, 그 결과 통화의 가치도 떨어진다. 한국은 일본처럼 해외에 많은 자산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달러를 벌어 올 신성장 산업이 필요한데 정치인들은 여기에 안목이 없다. 시중에 돈을 풀고,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등 쉬운 방법에는 빠르지만 그것은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

신성장을 위해 기껏해야 규제 완화가 고작이다. 아베가 잠든 일본을 깨우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영국의 캔서 리서치(Cancer Research UK)는 암 관련 신약 후보 물질 개발 아이디어가 좋으면 임상 1상 관련 비용을 제공한다. 정부가 신성장 산업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 인프라를 갖춰 놓은 좋은 예다. “규제를 풀어 줄 테니 너희가 잘해 봐라”라는 태도로는 창조적 결과물을 얻기 어렵다.

정부가 원화 가치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해외 투자를 통해서라도 부를 지켜야 한다. 차라리 그것이 애국일 수 있다. 갈등으로 인한 공급 차질 가능성이 있는 배터리 소재 및 반도체 연관 산업에 대한 투자 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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