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88] IMF와 엘비스 프레슬리

강헌 음악평론가 2021. 11.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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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vis Presley ‘Suspicious Minds’(1969)
Elvis Presley, ‘Suspicious Minds’(1969)

1997년 오늘은 한국 경제를 ‘before’와 ‘after’로 나누는 역사적 분기점이 된다. 김영삼 대통령이 외환 위기의 심화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수혈 자금을 요청했음을 발표한 날인 까닭이다. 기업의 파산과 헐값 매각이 이어졌고, 무엇보다도 고용시장의 안정성이 순식간에 붕괴했다. 이 터닝 포인트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라는 후유증을 낳았으며, 계층적 양극화의 어두운 터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로부터 15년 뒤, 유로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IMF 주요 20국 재무장관회의에서 우리나라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며 추가 재원 확충 작업의 산파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함정에 빠졌어요./나는 벗어날 수 없네요./왜 당신은 볼 수 없나요?/당신이 내게 한 짓을 말이에요./내가 한 말을 당신이 믿지 않을 때/우리는 계속 함께 갈 수는 없을 거예요./의심스러운 마음으로는/우리는 우리의 꿈을 함께 건설할 수 없을 거예요.”

박 장관의 함의는 함정에 빠져서 탈출할 수 없다고 국민에게 말해선 안 된다는 것, 힘을 모아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말하자는 것이었다. 심각하기 그지없는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빛의 속도로 구제 금융의 굴욕에서 탈출한 국가의 경제 수장이 팝송 가사를 언급하며 선진국 재무장관들을 독려한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대한민국이 눈부신 결집력으로 외환 위기 사태를 극복했을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대다수 서민의 가정엔 피눈물의 사연들이 하나둘씩 가슴에 새겨졌다.

하나회 숙정과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집권 초기에 90%가 넘는 전국적 지지도를 기록했던 문민정부의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을 몇 달 앞두고 터진 이 사태로 불명예를 안은 채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그 한이 맺혔음인가? 김영삼 대통령은 18년 뒤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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