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육권력 10년 독과점하며 변화 외면… 분열한 보수도 책임”

김승범 사회정책부 차장 2021. 11.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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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범이 만난 사람]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

좌파·진보 교육감이 교육 권력을 장악한 지 10년이 넘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가운데 14명이 좌파·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좌파·진보 교육 세력은 핵심 지지 세력인 전교조가 주장해온 각종 정책을 교육 현장에 속속 도입해 그동안 ‘한국 교육’에 파란을 일으켰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특목고 폐지, 전국 단위로 치러지던 학업성취도 평가 중단, 혁신학교 늘리기, 중·고교 교과서에서 ‘자유’ 표현 삭제 등 손꼽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정책들이 실행될 때마다 교육 현장에선 갈등과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을 만난 19일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 날이었다. 이 이사장은 “전교조 독과점 체제 아래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 요구에 교육 분야가 부응하지 못했다”며 “독과점은 어떤 형태든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은 19일 서울 강남구 아시아교육협회 회의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세계 주요국은 교육이 4차 산업혁명 흐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현 정부는 집권 기간 교육 분야에서 터진 문제를 수습하느라 허둥지둥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19세기 학교가 21세기 학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AI를 활용해 낡은 교육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교육 현장에서 끊이지 않는 갈등

-좌파·진보 세력이 장악한 교육 현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혼란의 연속이었다. 세계 주요국은 교육이 4차 산업혁명 흐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현 정부는 집권 기간 교육 분야에서 벌어진 혼란을 수습하느라 허둥지둥 시간을 보냈다. 정작 교육 현장을 바꾸는 본질적인 개혁 과제는 놓친 것이다. 교육 정책이 국민들에게 변화 방향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도 않고 희망을 주지도 못했다.”

-교육 현장에서 갈등이 계속됐다.

“좌파·진보 진영은 무슨 문제가 불거지면 상대방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고민하기보다는 자기들 생각대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사고 사태가 단적인 예다.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되 운영은 사립이 맡는 학교 모델로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의 ‘차터 스쿨’은 아예 공립학교 운영을 민간에 맡긴 것이다. 우리 정부는 공교육에서 사학의 역할을 강조하는 세계 흐름과 반대로 가고 있다. 자사고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장점을 살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사고가 변화를 선도하면 그 혁신 모델을 다른 공립학교가 활용해 같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자사고를 없애고 하향평준화로 가는 길을 택했다.”

좌파·진보 교육감들은 자사고·특목고를 두고 “평등 교육을 해치고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주범”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좌파·진보 교육감 자녀 중에 자사고·외고 출신이 적지 않아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서울·경기·부산교육청의 자사고 취소 처분에 불복한 전국 자사고 10곳이 1심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 ‘10전 10승’이다. 이 이사장은 “학교의 자율성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7월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의 미래 교육을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포럼에 참석한 이주호(가운데)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 왼쪽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오른쪽은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이태경 기자

-좌편향 교과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중·고교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의 ‘자유 민주주의’라는 표현에서 ‘자유’를 뺀 게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쓰도록 했는데 이를 그 이전으로 되돌린 것이다. 좌파·진보 교육감이 관할하고 있는 교육청이 이념 논쟁에 매몰된 것도 문제다. 헌법에서 정한 교육의 가치를 훼손하고 교육을 정치의 장으로 만들어버린 경우가 많다.”

전교조 독과점, 변화 요구 부응 못 해

-내년 6월 교육감 선거가 열리는데.

“특정 집단의 독과점은 그것이 어느 분야든 문제다. 특정 이념 단체의 이해관계에 매여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학교 교육으로는 4차 산업혁명 대응과 코로나로 인한 교육 격차 해소가 어렵다. 교육감 선거 때마다 분열과 사적 이익에 집착했던 보수 진영 교육감 후보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이 지금처럼 된 것에 대해 내 탓 남 탓 할 상황이 아니다.”

내년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중도 진영에서 단일 후보를 내기 위한 ‘교육감 선거 자문 원로회의’가 지난 9월 출범했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가 의장을 맡고 김도연·문용린·이기준·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과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각계 원로 18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동안 ’교육 개혁’은 진보 세력의 구호였는데.

“전교조는 기득권화됐다. 더 이상 변화를 추진할 수 없는 세력으로 보여 안타깝다.”

임기 내내 교육 정책 뒤집기

문재인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 수능 전 과목을 2021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을 포함한 대입 제도 개편을 추진했다. 반발이 커지자 교육부는 공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로 넘겼고, 교육회의는 다시 이를 “공론화 조사를 통해 결정하겠다”면서 ‘공론화위원회’에 재하청을 줬다. 4개월을 끌다 결국 전 과목 절대평가를 백지화하기로 했다. 고교학점제는 2022년 시행으로 공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행 시기를 2025년으로 연기한다고 2018년 발표했다가 지난 8월에는 사실상 2년 앞당겼다.

-오락가락 교육 정책에 학생·학부모 불만이 크다.

“이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서 교육은 뒤로 밀려 있다. 현 정부는 교육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한 측면이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입시 부정 의혹이 불거지자 대입 공정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2023년부터 서울 주요 대학 정시 전형 비율을 40% 이상 확대하는 걸로 방향을 틀었다. 들끓는 여론을 달래기 위한 임기응변 조치라는 평가가 많았다. 10년 넘게 추진해온 수시를 하루아침에 확 줄이고 정시를 늘리는 게 근본적 해법인가. 정시를 확대한다니 입시전문학원이 살아난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학생이 가는 학교가 달라지는 현상이 심화할 것이다. 공정성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나.”

-코로나 사태 이후 학생들 학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

“교육 공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우리나라 교실은 19세기 학교 시스템이 21세기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낡은 교육 모델을 빨리 바꿔야 한다.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으로 수백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던 교육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는 디지털 교육으로의 전환을 수십년 앞당겼다. 디지털 교육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AI(인공지능) 교육으로의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AI 중심의 4차 산업혁명으로 현재 초등학생이 장차 가질 직업의 65%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새로운 분야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교육을 산업의 급변하는 수요에 맞추어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AI 교육을 제대로 활용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AI로 공교육을 어떻게 바꾼다는 건가.

“미래사회는 평준화·다양화가 아닌 개별화 시대다. AI는 빅데이터를 통해 학생 수준을 교사보다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맞춤형 학습이 가능해진다. 학생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지식 전달을 AI가 맡으면 교사는 창의·인성 교육에 집중할 수 있다. 미국·중국·핀란드·싱가포르 같은 해외에서는 이미 AI를 활용해 이런 방향으로 공교육 시스템을 바꿔나가고 있다. 미래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은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 등 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개 수업 ‘무크(MOOC)’를 2013년 도입했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야 이 같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많이 늦었다.”

-AI 교육이 사교육 업체 배만 불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에듀테크는 과외·입시학원 같은 이전 사교육과 다르다. 에듀테크를 사교육이라고 해서 공교육과 분리시킬 게 아니라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더 나아가 글로벌 산업으로 키우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에듀테크가 발달하려면 통신 네트워크, 스마트폰·태블릿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 플랫폼, 콘텐츠의 네 가지 핵심 고리가 잘 갖춰져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바로 그렇다. 에듀테크 산업은 우리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벽이 높다. 에듀테크가 학교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교육 당국이 나서 교사들이 AI를 활용하게 한다.”

이주호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은 19일 서울 강남구 아시아교육협회 회의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세계 주요국은 교육이 4차 산업혁명 흐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현 정부는 집권 기간 교육 분야에서 터진 문제를 수습하느라 허둥지둥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19세기 학교가 21세기 학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AI를 활용해 낡은 교육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정부 규제가 대학 발목 잡아

-올해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우리나라 학교 순위가 떨어졌다.

“정부 규제가 대학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나 역시 과거 정부 교육 담당 책임자로 일할 당시 규제 개혁을 다하지 못했다. 규제 개혁이라는 게 정부 조직 개혁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교육부를 지금 그대로 두고 대학 규제를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제 대학은 교육·연구 기능에 더해 혁신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 교육부의 통제를 받는 구조에선 대학의 역할 확대가 쉽지 않다. 정부출연연구원처럼 국무총리실에서 대학에 대해 최소한의 규제와 조정 업무만 담당하게 해야 한다. 대학 지원은 혁신에 대한 투자와 함께 과학기술 기반과 산업계와의 연계 강화를 축으로 진행돼야 한다. 영국은 기업혁신개발부가 규제 개혁과 대학 지원 기능을 합해 혁신 생태계 조성이라는 목표 아래 종합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교육 공약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다. 대선 후보들이 교육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수업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무상교육이나 무상급식처럼 그동안 정치권에서 교육 공약으로 언급한 것 중에는 교육 정책이 아니라 복지 정책에 가까운 게 많다.”

☞이주호

1961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육개혁연구소장으로 있던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고, 2008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 올라 MB 정부 시절 교육 정책 설계자로 꼽혔다. 현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지난해부터는 그가 공동 창립한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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