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대나무'

엄민용 기자 2021. 11.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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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달 강릉의 오죽헌에서 오죽(烏竹)들이 꽃을 피워 화제를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나무는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짧게는 5년, 길게는 60~120년에 한 번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죽헌을 동네 뒷마당처럼 오간 사람들도 처음 보는 꽃이었을 터이다.

세상에는 별의별 꽃들이 피고 진다. 그중 옛사람들이 가장 예뻐한 꽃은 벼꽃이다. 도시에 사는 이들은 별로 보지 못했겠지만 벼도 꽃을 피운다. 꽃은 두세 시간 짧게 피고 지는데, 하나의 꽃송이 자리에 낟알 한 알이 맺힌다. 그것이 사람들의 목숨을 지켰다. 이렇듯 벼꽃이 생명을 상징하는 반면 대나무꽃에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대나무가 개화하는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꽃이 피면 대부분 모죽(母竹)이 말라 죽는다. 개화를 위해 땅속줄기의 양분을 모두 써 버린 탓이다.

사람들이 대나무를 일반적인 나무로 생각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해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대나무는 오래 살고 줄기가 단단해 얼핏 나무로 보이지만, 부피생장을 하지 않고 속이 비어 있다는 점에서 풀에 가깝다. 대나무는 생장하기 시작한 후 수십 일 동안 자라고는 더 이상 굵어지지 않고 굳어지기만 한다. 풀줄기가 딱딱해지는 것이다.

‘대나무’의 사전적 풀이는 “‘대’를 나무로 보고 이르는 말”이다. ‘대’에 대해서는 “볏과의 대나무속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볏과에서 가장 큰데, 줄기는 꼿꼿하고 속이 비었으며 두드러진 마디가 있다”라고 설명해 놓았다. 볏과 식물이니 당연히 풀이다. 이를 어찌 알았는지 윤선도도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라고 했다.

벼꽃이나 대나무꽃만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억새꽃’이다. 요즘 들녘에서 흔히 보는 억새의 하얀 털뭉치는 꽃이 아니라 ‘솜털씨앗’이다. 갈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억새꽃’과 ‘갈대꽃’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준국어대사전>에 ‘갈대꽃’은 있지만 ‘억새꽃’은 없다. 억새꽃을 뜻하는 말로는 ‘새품’이 올라 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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