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억을 탐험하고 기록..그것이 나만의 애도방식이야

이혜인 기자 2021. 11. 2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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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떠난 남편 이환희씨 글 모아 답글 에세이 '들어봐' 펴낸 이지은씨

[경향신문]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환희 편집자의 반려인 이지은씨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함께 쓴 에세이 <들어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를 바라보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출판편집자 환희씨가 남긴 글들
수집해 읽다가 답글을 쓰기 시작
연애·결혼·투병하던 시간들 생생
잔잔하고 부드러운 내용과 함께
익숙할 수 없는 이별의 절망 담겨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방법은 제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떠난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한없이 남겨진 기억을 나누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 마음을 정리한다. 이지은씨가 택한 것은 ‘글’이었다. 그가 반려인이라 칭하는 남편 이환희씨는 7개월의 뇌종양 투병 끝에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환희씨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기울이는 인문사회학 책을 만드는 출판 편집자였다. 부고 기사들에는 책을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던 환희씨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가수 윤종신의 오랜 팬이었던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았다.

글을 좋아하던 환희씨는 살아있을 때 여기저기에 자신의 글을 남겼다. 페이스북, 블로그, 가수 윤종신 팬페이지에도 글을 썼다. 지은씨는 환희씨의 글을 수집해 읽고 또 읽다가, 그에 대한 답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쓰기 시작했다. 답글이자, 애도일기다. 환희씨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째 되는 21일, 두 사람이 함께 쓴 에세이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이하 ‘들어 봐’)가 세상에 나왔다. 출간을 앞둔 지난 18일, 지은씨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연애 1년, 결혼생활 4년. 5년의 세월을 함께했지만 빈자리는 너무 컸다. 지은씨는 “‘덕질’하듯 환희씨의 글을 모아서 읽고 또 읽었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매일 같은 시간에 SNS에 답글을 썼다”고 말했다. 딱 100일 동안 그렇게 썼다. 책에는 그들이 연애, 결혼 그리고 투병하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던 벅찬 순간도, 짐작되지 않는 슬픔이 담긴 이별의 순간도 생생하다. 출판사 몇 곳에서 지은씨의 애도글을 책으로 내자는 제안이 왔다. “내 책이 아니라, 환희씨의 글을 더한 우리의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 받아들여져 책이 나왔다.

“‘내 글이 불행의 포르노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글이라면, 그러면 엮여져도 괜찮겠구나’ 생각했어요. 환희씨는 언젠가 자신이 쓴 책을 내고 싶어 했는데, 이 책은 환희씨의 첫 책이기도 해요.”

<들어 봐>에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내용만 담겨 있지 않다.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면서 주변 사람들이 겪을 법한 거칠고, 슬프고, 절망적이기도 한 일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지은씨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시간을 환희씨가 원하는 방식대로 편하게 보냈으면 했다. 하지만 환희씨의 어머니이자 지은씨의 시어머니는 환희씨를 살리기 위해 암에 좋다는 음식들을 만들어 먹이고, 민간요법들을 시도했다. 그것이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지만, 지은씨와는 맞지 않았다. 지은씨는 가족 간 다툼의 과정과 생생한 미움의 마음을 글로 적었다. 지은씨는 “그 글들을 쓸 때는 너무 속이 상하고, 어머님이 미웠다”고 말했다. “환희씨와 제가 만날 때 그랬던 것처럼, 이별하는 것도 충분히 우리가 그리던 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던 현실에 너무 속이 상했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제 글을 잃고 위로받을 수 있길”

책을 읽다 보면 ‘인간 이환희’가 어떤 사람인지도 조금 더 알게 된다. 그는 도시사회학, 젠더, 페미니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만들던 편집자였다. 환희씨는 누군가는 누릴 수 없는 결혼제도를 ‘선택’한다고 표현하는 것조차 사치스럽다고 느꼈다. 결혼한 후에 명절이나 일상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제의 관습을 느끼고, 때로는 그 관습을 매끄럽게 쳐내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한다. 편집자라는 일을 너무 사랑해서 너무 괴로워했다. 2020년 5월 그는 이런 글을 썼다. “난 천생 한량인데. 늘 평단과 독자를 고루 사로잡고, 회사의 명성을 올리며, 그 누구도 매출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책을 만들어 내놓고 싶었지. (…) 나는 끊임없이 지치고 힘들고 어려워하는 나를 비난하고 의심하고 다그치면서 죽이곤 했지. 괴롭고 괴롭고 괴롭고 즐겁고 괴롭고 짜릿하고 괴로웠지.”

“환희씨가 젊은 나이에 나름 좋은 책들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만 조명되면서 그가 떠난 후에 실제 환희씨가 희석되거나 미화되는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입체적인 친구예요. 정이 많고 강한 부분도 있지만, 연약하기도 했어요. 환희씨에 대한 설명이 좋은 한 줄로 끝나버리지 않길 바랐어요.”

지은씨가 SNS에 애도일기를 쓰는 것에 대해 우려한 주변인들도 있었다. 힘든 기억을 빨리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지은씨는 “저의 애도 방식은 ‘탐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나를 짓누르던 사별의 고통을 잊기 위해, 또 우리가 함께하던 시간을 박제하기 위해 밤마다 글을 남겼다. 우리를 기록하던 그 밤들이 당시의 나를 살게 했다”고 적었다. 그의 애도 방식은 그 안에서 한껏 슬퍼하는 것이다. 지은씨는 “가까운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제 글을 보고 위로받거나, 더 나은 애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제 글이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가까운 이의 상실이라는 것이 무척 보편적인 것인데, 한국에서는 금기시하면서 말을 많이 못 나누는 부분도 있잖아요하지만 숨긴다고 애도한다는 건 아니잖아요잘 애도하려면 잘 슬퍼해야 하는 것 같아요떼어놓으려고 하면, 슬픔은 더 짙어지니까.”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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