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신론 - 이기백 [김경식의 내 인생의 책 ①]
[경향신문]
1979년 10월27일 아침.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알리는 신문 호외가 시내에 뿌려졌다. 인왕산 밑 누하동에서 하숙을 하던 나는 그즈음 갓 개통된 금화터널을 지나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갔다. 교문 앞에는 군인들이 학생들의 등교를 막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불안한 발길을 돌려 누상동에 사시는 이기백 선생님을 찾아갔다.
한국사 수업을 수강하고 있었지만 무작정 찾아가 가까이 마주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온 제자를 선생님은 선뜻 맞아주셨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직후 혼란한 눈빛으로 찾아온 제자의 질문과 의문으로 이어진 대화 속에 선생님은 말을 아끼셨다.
“선생님, 오늘 이 사건은 먼 훗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요?”라는 물음에 선생님은 “역사의 흐름에서 봐야지”라고 답하셨다.
‘한국사의 오랜 발전 속에 한 시점으로서의 현재’를 강조하며, 선생님의 역사관을 일관된 관점으로 서술한 책이 <한국사 신론>이다.
이 책이 다른 한국사 통사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점은 시대 구분에 있다. 한국사를 왕조의 변천이나 고대·중세·근대로 나누던 기존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지배세력(주도세력)의 확대 과정’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해야 하며, 일정한 기간에 정치·경제·문화를 주도했던 세력이 누구였는가를 알아내어 그들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체계화하셨다.
“민중은 한 발짝씩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여 19세기 말에는 잠시나마 집강소를 통한 정치참여도 하였고, 3·1운동과 4·19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사회정의가 보장되는 민주국가의 건설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눈앞에 벌어지는 사회적 상황에 흔들리는 나에게 언제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주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고.
김경식 | 고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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