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문화역서울 284

한겨레 2021. 11. 21. 18: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서울 중구 통일로1 문화역서울 284. 임형남 그림

노은주·임형남ㅣ가온건축 공동대표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지어진 옛 서울역사는 말하자면 ‘돈카츠’나 ‘멕시칸 사라다’ 같은 건물이다. 그 음식들이 ‘의사(pseudo) 서양음식’이듯 서양 건축의 양식이 섞여 있는 ‘의사 서양 건축’이다. 일본은 앞선 서양의 근대문명을 받아들여 빠르게 학습하고 소화해서 주변의 나라들을 차근차근 정복했다. 그들은 답답한 섬나라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했으며 나아가 제국으로 일어서고자 했다. 서울역사는 그때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전초기지로 삼아 지은 건물이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설립을 주관하고 도쿄역과 같은 규모로 계획하였으나,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그러나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었다. 도쿄대 교수인 쓰카모토 야스시가 설계를 맡았는데, 중앙돔은 비잔틴 건축양식이고 전체적으로는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따라 7만평의 대지에 2천평의 규모로 지어졌다. 웅장하게 우뚝 솟은 당시 ‘경성역’은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여 존재감이 덜한 지금과는 달리, 그 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일본인들은 그 건물로 들어가면 마치 스위치를 눌러 컴퓨터 화면을 부팅하듯, 일본이라는 제국이 켜질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을지 모른다.

의도했던 대륙으로의 관문은 아니었지만, 서울역은 서울의 관문 역할을 오랜 시간 충실히 수행했다. 물리적 거리를 혁신적으로 줄여준 기차를 타고 많은 사람이 타지에서 흘러들어왔다. 그래서인지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많은 소설에서 서울역은 배경으로 등장한다. 특히 이상의 소설 <날개>와 박완서 소설 <엄마의 말뚝>이 기억난다. 날개의 주인공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안 오고 설사 왔다가도 곧 돌아가’는 2층 ‘티이루움’에서 커피를 마신다. 엄마의 말뚝에서는 주인공이 어머니와 손을 잡고 서울역 광장으로 나와, 지게꾼과 흥정하고는 짐을 앞세우고 현저동 고개까지 걸어서 간다.

내게도 추억이 많다. 특히 방학 내내 시골 친척 집으로 ‘유배’ 갔다가 돌아오며 서울역 광장에 들어설 때 무성한 매연을 뿜어대는 자동차들이 범람하는 넓은 도로의 그 바쁨과 그 혼탁한 공기가 주는 뭉클함과 안도감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고향의 냄새였기 때문이다.

서울역이라는 문은 나서면 현대로 들어서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상상을 하게 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괜스레 사람을 주눅 들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문화로 들어가는 문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서울역이 문화공간으로 바뀌게 된 시기는 21세기로 접어들고 10년이 지난 2011년이었다. 2003년 12월 고속철도를 품는 신역사가 완공되며 2004년 기차역의 기능은 끝난다. 그리고 2008년부터 3년 동안 고증을 거쳐 지을 당시의 모습을 되찾으며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리고 10년이 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1939년에 폐쇄되었던 오르세역을 개조하여 1986년 오르세 미술관을 열고,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전시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오래된 건물을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변신시키는 유행의 신호탄 같은 사건이었다. 산업유산인 창고나 발전소가 박물관이 되고 미술관이 되는 일이 세계 각국에서 많이 이루어지는데, 서울역 역시 그런 연장선에 있다.

그곳에 종종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가는데, 아쉽게도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흘러 다니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고속철도를 타고 유리로 투명하게 지은 새 역사를 나와서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바삐 지하철 역사로 흘러들어간다.

문화역서울 284는 주변 시설과의 연계가 단절된 하나의 섬처럼 존재한다. 광장에서는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거나 종교적 신념을 확성기를 통해 드러내는 사람들로 시끌시끌하고, 몇몇 노숙자들이 얇은 가림막을 지붕 삼아 쉬고 있다. 요즘에는 ‘코로나 선별검사’를 위한 커다란 천막이 새로운 구성원이 되었다. 그 어수선함 뒤로 서울역은 퇴역한 장군처럼 근엄하지만 퇴색하였고 권위가 희미해진 모습으로 존재한다. 단장하며 어깨에 힘을 불어넣었지만 정작 생기가 없는 박제와도 같다.

그건 조금 전위적인 풍경이다. 이런 장소에서 새롭게 문화를 꽃피우는 일은 어찌 보면 가장 의미가 깊고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장소에 맞는 새로운 기획과 활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역사성에 의존하는 일방향적이고 평면적인 활용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 연회가 그랬고 전통 예술이 그랬던 것처럼 객석과 무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같이 섞여 들어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창조적인 현대의 정신이 담긴 예술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이 더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