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와 로저

한겨레 2021. 11. 2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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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을 걱정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역정이 난다.

따지고 보면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것과 다를 바 없다.

광활한 저습지나 깊은 산을 마음껏 누빌 때 비로소 호랑이는 완연한 호랑이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을 게다.

대대적인 포획도 있었지만, 그들이 자취를 감춘 건 무엇보다 그들을 그들로 만드는 생태계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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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정나리ㅣ대구대 조교수

출산율을 걱정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역정이 난다. 따지고 보면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것과 다를 바 없다. 듣기로 호랑이 한마리가 살아가는 데 엄청난 면적의 야생 숲이 필요하다고 한다. 광활한 저습지나 깊은 산을 마음껏 누빌 때 비로소 호랑이는 완연한 호랑이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을 게다. 대대적인 포획도 있었지만, 그들이 자취를 감춘 건 무엇보다 그들을 그들로 만드는 생태계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성인 개체에게 기대어 기나긴 훈련기간을 거치느라 독립된 개체로의 성장이 20년 넘게 지연되는 인간을 완연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폴 왓슨은 진정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했다. 기울어진 사회를 직접 뜯어고치라, 기후위기를 손수 해결하라고 할 요량으로 후속 세대를 양산하는 건 마치 마차를 말 앞에 놓는 형국이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선 첫째를 낳으면 얼마를 주고, 어디에선 셋째를 낳으면 뭘 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어이없는 뒷북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 버럭 한다. ‘인간’을 ‘인구’로 그렇듯 쉽게 등치시켜버리니,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내는 것은 대체 ‘삶’이 아닌 뭘로 환치해내려나 궁금하다.

얼마 전 동네 아이를 따라 앵무새 카페에 다녀왔다. 은서는 어깨에 날아와 앉는 형형색색의 앵무새에게 완전히 매료되었고, 이미 앵무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형태와 크기에 상관없이 다양한 타 존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붙였다. 올챙이, 지렁이, 콩벌레, 닭 등 못 만지는 동물이 없을뿐더러 특히 동네 고양이들과 절친이었다. 몇해 전 여름 폭풍우에 우리 집 뒤로 흐르는 낙동강이 범람했을 때 마침 그가 방문하였다. 날이 갠 후 강변을 산책하다 미처 강줄기로 돌아가지 못하고 뭍에서 팔딱이는 작은 물고기들을 그가 발견했다. 두 손을 모아 한마리씩 긴급히 구조하여 강에 놓아주기를 여러차례, 은서는 그들이 거센 물살 속으로 무사히 헤엄쳐 가는지 한참을 응시하였다. 아직도 대형마트에 갈 때면 열대어를 파는 수족관 앞에서 넋을 놓고 붙박이가 된다고 한다. 호랑이가 숲을 필요로 하듯 유전자 깊은 곳에 새겨진 아이들의 야성도 제한된 건조환경 안에서 쇠락하여 박제된 자연세계의 흔적들을 애써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침묵의 봄>으로 잘 알려진 레이철 카슨은 조카 로저와 함께 비바람 치는 가을밤의 바다와 폭신폭신 이끼 가득한 여름 숲에 나가 ‘자연의 경이로움’과 조우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물결, 파도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 모래빛 유령게, 해가 떠오르기 직전 개똥지빠귀의 지저귐, 귀뚜라미가 무성한 수풀, 긴 여정 끝에 숲을 적시는 빗물, 둥근 달 너머로 이동하는 철새들, 은빛 하늘의 강 등 세상에 다시없을 아름다운 순간들을 같이했다. 카슨은 로저에게 동식물의 이름을 알려주려 애쓰거나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둘은 그저 ‘모든 것들이 살아 있는 시간이자 장소’에서 경외감을 느끼며 ‘즐거움에 겨워 크게 웃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기꺼이 내놓는 공간은 어린이 보호구역, 키즈카페, 깡마른 나무가 급히 이식된 귀퉁이 공원 그리고 반듯이 닦아놓은 오토캠핑장 정도. 함께 즐거움에 겨워 웃을 그런 풍요로운 자연환경은 희귀하다. 아이들을 ‘위해’ 샀다는 금화조도, 금붕어도, 캠핑카도 뒷북이 되고 만다. 아이의 시간을 점령하고, 결코 주조해낼 수 없는, 길들여지지 않는, 장엄하고 기적적인 자연의 냄새와 소리가 있는 장소를 앗아간 우리에게 카슨은 부탁한다. ‘어느 봄날 아침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래를 듣지 못한 채 아이가 자라나도록 내버려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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