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어떤 가치를 위해 기도할까

한겨레 2021. 11. 2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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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그런데 입시철이 되면 서로 다른 종교들이 마치 동일한 종교력을 쓰고 있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의 수많은 종교단체가 '수능시험' 100일 전과 50일 전 즈음 수험생을 위한 기도를 독려하는 펼침막을 곳곳에 내걸었다.

감염병 상황에 맞춰 수능 관련 종교행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거나 발원문 혹은 기도문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급하는 종교단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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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뉴노멀-종교] 구형찬ㅣ인지종교학자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험생과 그 가족을 비롯해, 학교, 학원, 교육부, 경찰, 방역당국의 수많은 관계자들이 가쁜 숨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으면 좋겠다.

매년 ‘입시철’마다 분주한 것은 수험생, 교육계, 정부만이 아니다. 사찰과 교회 등 여러 종교시설도 바쁘게 돌아간다. 제도화된 종교들은 대개 독자적인 전통의 달력, 즉 종교력을 가진다. 당연히 종교마다 중요하게 기념하는 날도 다르고 의례와 행사를 치르는 시기도 다르다. 그런데 입시철이 되면 서로 다른 종교들이 마치 동일한 종교력을 쓰고 있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학입시를 앞둔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일일 텐데, 얼핏 보기에 ‘대목’을 앞둔 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의 수많은 종교단체가 ‘수능시험’ 100일 전과 50일 전 즈음 수험생을 위한 기도를 독려하는 펼침막을 곳곳에 내걸었다. 기도 명소로 소문난 곳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감염병 상황에 맞춰 수능 관련 종교행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거나 발원문 혹은 기도문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보급하는 종교단체도 있었다. 수능 당일에는 시험이 치러지는 약 9시간 내내 여러 종교시설에서 이른바 ‘수능기도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실황 영상이 수십개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중계되었다.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었던 영상은 대부분 개신교 쪽 콘텐츠지만, 날짜 범위를 넓혀 검색하면 천주교, 불교, 원불교, 무교(무속) 등 다양한 종교에서 제작한 동영상 콘텐츠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누군가의 안녕과 성공을 기원하는 데 특정 종교의 교리와 의례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선례를 참고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깨끗한 물 한그릇을 떠 놓고 두 손을 모았던 옛 어른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기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간절함은 짐작할 수 있다. 수험생을 위해 기원하는 사람의 마음도 다를 리 없다. 그런데 종교단체들은 종교행사를 통해 그 간절한 기원에 종교적 권위와 전문성을 부여하고 교리적 정당성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참여자에게 집단적 경험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종교단체가 이토록 적극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수능을 잘 치르는 일이 인생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는 종교행사를 통해 수능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지속시키고 강화하면서 종교단체가 얻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신념체계를 내세우는 한국의 수많은 종교단체가 이만큼이나 적극적으로 동감을 표시하며 달려드는 가치가 또 있을까? 수능이라는 이슈의 ‘엄청난 가치’에 비하면 기후위기나 차별과 같은 이슈는 종교단체들에 여전히 먼 세상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수능 날 오전, 청소년들이 서울 청계광장 근처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입시 대박이 아니라 입시 폐지를 원한다”며, 청소년 324명의 이름으로 ‘입시경쟁 반대 청소년 선언’을 발표했다. 입시경쟁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입시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청소년들도 더러 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도 커지고 있고 교육의 형식과 내용도 변하고 있다. 팬데믹을 겪으며 삶의 여러 차원에 중대한 변화가 일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가치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다.

입시철에 선거철까지 겹쳤다. 이 시기에 종교단체들은 과연 어떤 가치를 위해 기도하자고 신자들을 독려하게 될까? 그들이 종교적 권위, 전문성, 정당성을 부여하고 공동체 의식을 호소하게 될 이슈는 무엇일까? 그들이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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