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직언 "중국에 몰린 반도체공장, 아세안으로 분산해야"

이윤재,박윤구 2021. 11. 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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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용 교수가 묻고 권오현 삼성전자 고문이 답하다
美中갈등이 부른 공급망 문제
기업 차원서 해결하기 어려워
국가미래 좌우할 문제로 봐야
정부, 일시적 稅혜택보다는
핵심산업 선별해 맞춤 지원을
초격차 위해선 CEO 역할 중요
실무는 똑똑한 부하에 맡기고
리더는 미래 내다보는 일 해야

◆ 권오현 명예의 전당 헌액 대담 ◆

지난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어워드 선정위원장을 맡은 송재용 서울대 교수(왼쪽)와 헌액자인 권오현 삼성전자 상근고문이 대담을 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에 집중된 국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아세안 지역으로 다변화하는 것도 검토해야 합니다."

19일 한국경영학회와 매일경제신문이 주최한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전당' 헌액식에서 전문경영인 부문에 권오현 삼성전자 상근고문(전 삼성전자 부회장·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이 헌액됐다.

이날 헌액식에서 권 고문의 헌액을 기념해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 교수와의 특별대담이 진행됐다.

이날 대담을 진행한 송 교수는 권 고문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는 2013년 '삼성웨이'를 출간했다.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던 권 고문이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으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됐다. 이어 2014년 '삼성웨이' 영문판이 출간됐을 때는 권 고문이 이 책의 추천사를 직접 썼다. 이들의 '브로맨스'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송 교수는 올해 8월까지 전미경영학회 국제경영분과 회장을 맡으며 미국 경영학계 관심사와 재계의 현안 등을 주제로 다수의 세미나를 이끌었고, 이 과정에서 권 고문과의 대화가 방향을 설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인터뷰는 송 교수와 권 고문의 현장 대담, 여기에 매일경제 인터뷰를 더해 진행됐다.

―글로벌가치사슬과 공급망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 그 중심에 반도체가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코로나19 때에는 마스크 사태가, 최근에는 요소수 사태가 있었다. 반도체 역시 그중 하나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려면 우선 핵심 공정 중심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으로 국내 생산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과거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를 중심으로 한 로컬라이제이션(지역화)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필요한 산업과 기술을 각 나라에 두든지, 아니면 진짜로 믿을 수 있는 파트너들과 함께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전부 리쇼어링할 수는 없으니 전략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는 미래·안보·경제를 위해 일시적인 세제 혜택보다는 꼭 필요한 산업을 선별해 이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내 업계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은 무엇인가.

▷첨단장비 공급과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미국과는 돈독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 집중돼 있는 생산시설을 아세안 지역으로 다변화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다.

―현업에서 물러난 이후 집필한 저서 '초격차'가 베스트셀러다. 초격차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은.

▷아무리 자산이 많고 잘나가는 회사라도 리더를 잘못 만나면 한순간에 무너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최근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배경은 전 세계가 변혁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변혁을 맞고 있다. 우리는 지난 60년간 '패스트 폴로어'로서 세계 최고봉에 올라섰다. 문제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패스트 폴로어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게 다음 단계로 가는 길이다. 변혁기의 리더는 자신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최고봉에 오른 사람들은 과거의 성공 스토리에 매몰돼 기존의 방법을 쓰려고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따라서 조직의 리더들은 미래에 대비해 인재를 키워야 한다.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쓰는 게 아니라 가치 있는 시간을 써야 한다. 기존 일들은 주변에 있는 똑똑한 부하들에게 맡기는 권한 이임을 하고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시스템을 만들고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해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국내 반도체·IT 업계 혹은 삼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삼성전자 재직 시절 시스템 반도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모든 반도체 기술이 극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개발비는 많이 들지만 비용을 낮추기는 어렵게 된다. 그렇지만 다른 방향으로 성과를 낼 수도 있으니까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야 했다. 최근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전 세계 시장이 변화하고 있는데,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잘나가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등은 전부 데이터 회사다. 우리나라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을 제외하면 세계적인 수준의 데이터 기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도 앞으로 데이터 중심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오랜 기간 오너 경영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에게 필요한 역할은.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창업주 중심의 가족 기업이다. 이러한 오너 경영은 한국을 지금 수준까지 끌어올린 굉장히 좋은 시스템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한 수준으로 아무것도 없는 나라였다. 여기까지 성장한 데는 한국을 잘살아보게 하겠다는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정신이 있었다. 누군가 창업과 개업의 차이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창업은 창업자들이 왜 사업을 시작했는지 등에 대한 자신만의 경영철학이 있다.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나라가 너무나 가난하니 내 기업을 일으켜서 사업 보국을 해야겠다는 철학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오너와 창업자, 후계자들은 본인 나름의 철학을 키워서 기업이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추구하는 미래 가치를 전해야 한다. 그 가치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게 전문경영인의 역할이다.

"장수기업 되려면 직원 금전보상 중요…연봉·승진기준 명확해야"
지난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전당` 헌액식에서 전문경영인 부문 첫 헌액자인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오른쪽)이 권오현 삼성전자 상근고문 헌액식에 참석해서 축하해주고 있다. [이승환 기자]
권오현 삼성전자 상근고문이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 전문경영인 부문에 헌액된 지난 19일은 권 고문이 칠순을 맞은 날이었다. 1952년 10월 15일생인 권 고문은 이날 음력으로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았다.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권 고문은 이날 "젊은 세대에게 나의 경험을 공유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오랜 기간 해왔다"고 말했다.

―책 집필과 서울대 지주회사 SNU홀딩스 이사장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현직에 있을 때부터 내가 쌓아왔던 경험과 지혜, 노하우 등을 젊은 친구들에게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 주로 40대 창업자, 중견기업 2·3세와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내 삶과 경험을 전달하고, 그들 역시 나의 멘토가 돼 내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많이 전해주고 있다. 단순히 내 경험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서로 배우는 것이다. 현업에서 떠난 뒤에는 '후배들을 도와주자'는 목표를 세웠다.

―평소 장수 기업이 되기 위해 정당한 금전적 보상을 하라는 지론을 펼쳤다.

▷공정을 담보하는 보편타당한 유일한 평가 시스템은 없다. 이 때문에 사내 사업군·직군·직급별로 구성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업이익의 몇 %를 임직원에게 돌려주겠다. 단 그 상한은 이것으로 정한다'처럼 누구나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실행하면 된다.

―반도체 산업 인력 양성을 위해 정부·산업계·학계가 해야 할 일은.

▷반도체 인재 육성을 위해 기업은 학교와 손잡고 관련학과 신설, 인턴십 제공, 전문인력 양성·선발 등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기술은 다양한 학문의 지식이 필요하다. 우수 이공계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에서는 특정 학과 신설로 혜택을 몰아주기보다는, 이공계로 진학해 기초 과학을 수료한 학생들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 관련학과를 선택해서 심화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업에도 이공계 기초가 탄탄한 학생들의 채용 기회를 넓히고 사내 재교육을 통해 인재를 육성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전문 인력에 대한 혜택을 제공한다면 더 많은 인재가 이공계에서 본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한국경영학회 명예의 전당 전문경영인 부문에 헌액된 소감은.

▷회사의 업적을 대신해 수상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저 개인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이 매우 놀랍고 기쁘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권 고문은…

△1952년 서울 출생 △1975년 서울대 전기공학 학사 △1977년 KAIST 전기·전자공학 석사 △1985년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박사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입사 △1992년 삼성전자 64M D램 개발팀 팀장(이사) △2008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2011년 삼성전자 DS부문 부회장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2013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2020년~현재 삼성전자 상근고문

[정리 = 이윤재 기자 /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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