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80년만의 귀향'..봉평 메밀꽃밭에 안기다
평양부터 파주까지 떠돌아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무대
평창군 봉평 이효석문학관 옆
달빛 공원내 언덕에 안치
이효석 장남 이우현 이사장
"이제 영원한 안식 찾으시길"
가산 이효석 묘소에 얽힌 사연은 1940년대부터 시작된다.
복막염으로 부인 이경원 여사를 2년 전 먼저 떠나보냈던 가산은 1942년 35세 젊은 나이에 뇌막염으로 요절한다.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가산이 세상을 떠나자 유골은 그의 부친에 의해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의 '곧은골'로 옮겨졌다. 자신이 태어났던 진부면, 고향 선산이 위치한 곧은골에서의 평온은 그러나 영원하지 못했다.
1973년 영동고속도로가 깔리면서 선산이 둘로 쪼개진 것. 묘역의 밑동이 잘리는 아픔을 겪으며 가산과 이 여사 묘소는 진부면 옆 마을인 용평면 장평리로 이장됐다.
그러나 장평에서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영동고속도로 확장공사가 시작되면서 또 이장이 필요해진 것이다. 가산 묘소는 1998년 이북도민을 위한 '실향민 묘지'로 유명한 파주 동화경모공원으로 옮겨진다.
이우현 이사장은 "내가 미국에 거주할 당시 한국의 큰누님(장녀 이나미 여사)께서 '집안 선조들께서 함경도 함흥에서 출발하셨음을 기억해 북녘 하늘이 보이는 곳에 모시자'는 뜻으로 파주에 모셨다"며 "평창군 측에서 이효석문학관 옆에 유택을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해와 가족들과 2년여 고심 끝에 결정했다. 해방 이후 국토건설, 산업화, 지형 변화에 따라 아버지의 묘를 전전했다. 오랜 세월이었다"고 소회했다.
이에 따라 이효석 유택은 '평양→평창(진부)→평창(장평)→파주'를 거친 다음 다시 평창(봉평)으로 돌아온 셈이다. 봉평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봉평장이 열린 곳으로, 조선달과 장돌뱅이 생활을 하던 주인공 허생원이 동이를 만나는 곳이다.
이날 유택 이전은 오전 6시 파주 탄현면 동화경모공원에서 시작됐다.
원내 묘역 '함남(함경남도라는 뜻) C6 2열 78번'에 묻혔던 부부의 유골함은 포클레인과 삽으로 1m쯤 파내려가자 모습을 드러냈다.
봉분을 쌓고 뗏장이 깔리자마자 유족의 별도 요청에 따라 기독교식으로 예배가 진행됐다. 이후 참배객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헌화했다. 이우현 이사장은 "아버지의 문학 작품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대목이 다수인데 이렇게 평창으로 다시 오게 됨을 감사히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산 이효석은 평창에서 태어나 만 4세 때 서울로 이주한 뒤 성인이 된 이후 평양에서 살았다. 그래서인지 가산의 수필에는 고향을 떠난 자로서의 심경이 드러난다. 글 '영서(嶺西)의 기억'에서 "고향 없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때때로 서글프게 뼈를 에이는 적이 있었다"고 표현할 만큼 그는 이방인으로서의 의식이 강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떠돌이 허생원의 자의식과도 무관치 않다.
그의 '이방인 의식'은 아스라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동시에, 세계인으로서의 보편 문학을 추구한 토대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글 '화분'에서 이효석은 "같은 진리를 생각하고 같은 사상을 호흡하고 같은 아름다운 것에 감동하는 오늘의 우리는 한구석에 숨어 사는 것이 아니요, 전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고 쓰기도 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일반 독자는 주로 '메밀꽃 필 무렵'을 쓴 향토색 짙은 서정소설의 작가로만 가산을 기억하지만 그는 보편주의, 공통주의, 세계주의를 실현한 작가로 평가받기에 손색없다"고 말했다.
이효석을 추모하는 열기는 뜨겁다. 매년 9월 강원 평창군 봉평에서 열리는 봉평메밀꽃축제는 전국 지역축제 중에서도 손꼽히는 성공적 축제로 정평이 나 있다. 이맘때쯤이면 어느 한곳이라고 지목할 것도 없이 봉평면 천지사방이 메밀향으로 가득해 장관을 이룬다. 내년 제23회를 맞는 이효석문학상은 2015년부터 매일경제신문·이효석문학재단·평창군이 공동 주최하고 있으며 7년간 이서수·최윤·강영숙·장은진·권여선·조해진·전성태 소설가가 대상을, 34명의 작가가 우수상을 받았다.
이날 유택 이전식에서 한왕기 평창군수는 "이효석 선생이 태어나 태(胎)를 묻었던 평창에 모시게 됐다. 가산 문학의 의의를 받들고, 이를 국민과 나누는 명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행사에서는 가산이 생전에 독일어로 자주 불렀던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가 독일어로 울려퍼졌고, 달빛공원에 몰린 관계자 약 100명은 일일이 국화꽃을 올리며 가산을 추억했다.
[평창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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