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 대작 '지리산'의 진짜 문제, 김은희 세계관의 균열 [스경연예연구소]

하경헌 기자 2021. 11. 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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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tvN 주말극 ‘지리산’의 한 장면. 사진 tvN


tvN 주말극 ‘지리산’은 150억원대의 제작비와 넷플릭스 ‘킹덤’으로 세계적인 인기 각본가의 대열에 오른 김은희 작가 그리고 배우 전지현의 캐스팅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하반기 가장 큰 기대작으로도 꼽혔다.

하지만 종주의 절반이 지난 현재 그 평가는 완만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마치 10%로 시작해 7%로 차츰 낮아지고 있는 시청률과 비슷하다. 초반에는 어색한 CG와 과한 PPL 그리고 인상에 남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가 도마에 올랐다.

물론 앞서 거론한 많은 요소가 ‘지리산’에 대한 평가절하에 큰 몫을 차지했지만 그 원인은 좀 더 근본적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지리산’에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김은희 작가가 펼치는 세계관의 균열이다.

tvN 주말극 ‘지리산’의 한 장면. 사진 tvN


김은희 작가는 지상파 데뷔작 ‘싸인’과 뒤이은 작품 ‘유령’ ‘쓰리데이즈’에서 특유의 냉철한 세계관으로 로맨틱 코미디가 넘치는 시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 소재는 법의학자, 해커, 정치권력의 최상부 등 다양했지만 김은희 작가가 그리려고 했던 세계는 철저한 고증과 검증을 거쳐 펼쳐놓는 ‘힘의 이야기’였다. 힘을 가진 이와 이를 뺏으려는 이, 이를 뺏겨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이 각종 사건, 사고 너머 아로새겨져있었다.

2016년 ‘시그널’부터 김은희 작가의 세계에는 판타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그널’에는 과거와의 무전, ‘킹덤’에는 생사역으로 불리는 좀비가 있었다. 이번 ‘지리산’도 비슷하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생령으로 지리산을 떠도는 강현조(주지훈)와 살인의 그림자를 쫓는 서이강(전지현)의 추적이 기본 골격이다.

판타지 설정에도 김은희 작가의 작품이 각광을 받았던 것은 소름끼치는 현실의 재현력이었다. ‘시그널’에는 과거의 무전에 앞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시대적인 구조 모순이 잠들어있었고, ‘킹덤’ 역시 좀비보다 더 무서운 권력자들의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리산’에서는 이러한 힘의 균형이나 충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을 저지르는 장본인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은 지리산에 터를 잡고 있는 선량한 주민들이다. 레인저들이나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 하다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 역시 사실은 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 약자들이다.

tvN 주말극 ‘지리산’의 한 장면. 사진 tvN


모순이 없는 배경에 지리산의 영험한 기운을 얹어놓고 미스터리를 가미하려고 하니 그림이 잘 맞지 않는다. 이는 지난 7일 방송한 6회에서 도드라졌는데 1회 모두를 서이강의 첫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를 내보내며 본 줄거리와 거리를 두는 듯 하더니 갑자기 막바지에 강현조가 앞일을 내다보는 예지현상을 갑자기 들여와 긴장감을 억지로 조성했다. 한 회 한 회가 다른 이야기 같은 옴니버스식 전개와 2018년과 2020년이 교차로 나오는 시간의 배열 역시 시청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결국 ‘지리산’은 그 종주에 들어갈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하는 등산객들에게의 이미지를 시청자에게도 주고 있는 셈이다. 쉽게 그 능선을 오를 수 없다. 그 능선을 오르는 흙과 바위, 땅은 모두 탄탄한 현실이어야 한다. 판타지와 현실이 엇박자가 난 김은희 작가의 세계, ‘지리산’은 그 뿌리부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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