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비혼주의와 통일

한겨레 2021. 11. 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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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제트(MZ) 세대는 비혼주의가 대세다.

엠제트 세대는 통일도 부담스럽다.

결혼이 사랑의 필수가 아닌 것처럼 통일도 평화의 필수가 아니다.

무력 통일이나 흡수 통일은 강제 결혼이나 매매혼처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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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게티이미지뱅크

전범선ㅣ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엠제트(MZ) 세대는 비혼주의가 대세다. 결혼이 부담스럽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보다 각자 주체적이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상호 의존적이지 않은 동반자 관계를 지향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결혼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뜻하기 때문에, 성평등한 관계를 위해 결혼을 거부하기도 한다. 비혼주의를 엔(n)포 세대의 안타까운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포기가 아닌 해방이다.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포기했던 과거와 달리, 평생 스스로에게 집중한다.

엠제트 세대는 통일도 부담스럽다. 왜 굳이 남북이 하나 돼야 하나?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다. 결혼이 사랑의 필수가 아닌 것처럼 통일도 평화의 필수가 아니다. 요새는 결혼을 전제로 연애하면 첫걸음 떼기가 힘들다. 남북이 통일을 전제로 대화하는 것도 억지스럽다. 최소한의 교류라도 하면 성공이다. 결혼은커녕 전화라도 받으면 좋겠다. 사귀어보고 잘 맞는다 싶으면 결혼은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다.

지금 같은 경제 격차에서 통일이란 식민지화를 뜻한다. 북한이 남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양쪽 사정이 이렇게 천지 차이면 결혼이 서로 부담스럽다. 한쪽에서는 혼수 비용이 많이 들어서, 다른 쪽에서는 자존심 상해서 싫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남남북녀’만큼 구시대적이다. 가난한 여성이 돈 많은 남성과 결혼해서 팔자 고치는 이야기는 아름답지 않다. 통일 이후 남한 자본이 어떻게 북한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연을 파괴할지 뻔하다. 무력 통일이나 흡수 통일은 강제 결혼이나 매매혼처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최근 들어 이성애 중심적인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는 것도 비혼주의에 한몫한다. 현재 결혼이라는 제도는 동성애, 양성애, 다자 연애 등 다양한 사랑을 포용하지 못한다. 오히려 배척한다. 출산을 전제로 남녀 커플을 장려하기 위한 국가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앞세운 통일도 배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한민족이 하나 되는 일은 다문화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흐름과 배치된다. 이제는 훨씬 다채롭고 개방적인 평화를 설계해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나 ‘한겨레’ 같은 그릇에 모두를 담기에는 한반도가 이미 너무나도 역동적이며 세계적이다.

통일은 반드시 획일적이다. 둘을 하나로 합치는 일이다. 개성을 중시하는 엠제트는 다른 것을 똑같이 만드는 것을 싫어한다. 중앙 집중보다 지방 분산을 선호한다. 대한민국은 철저히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간다. 문화 경제적으로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다. 남성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인간 중심주의 등 모든 중심주의의 근원은 바로 중심주의 그 자체다. 중심이 꼭 있어야 하고, 중심이 정상이며, 주변부는 중심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지금처럼 서울이 곧 대한민국인 이상, 우리는 중심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섣부른 통일은 북한마저 수도권 중심주의로 지배해버릴 것이다.

나는 한반도에 한 나라보다 두 나라가 있는 것이 좋다. 전쟁하고 싸우는 게 싫을 뿐이다. 세 나라, 네 나라면 더 좋다. 평양은 서울과 견줄 만한 또 다른 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깔때기처럼 북한을 서울로 쓸어 담는 꼴이 되면 안 된다.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까지 여섯 나라가 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하나로 합치는 것에 목매지 말고 둘이, 여섯이 함께 어울려보자. 엠제트는 양자 연애가 아닌 다자 연애도 인기다. 목표를 통일에서 평화로, 획일화에서 다양화로 수정하면 남북 대화와 6자 회담의 전망도 바뀐다.

노래를 바꿔 부르자. “우리의 소원은 평화.” 엔포 세대가 통일까지 포기했다고 걱정하진 말라. 비혼주의가 사랑의 껍데기 대신 알맹이에 집중하게 하듯이 비통일주의 역시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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