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곳은 경찰뿐인데'..끔찍한 데이트폭력 끝 살인 '속수무책'

강수련 기자 2021. 11. 2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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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폭력 인식 개선 절실..가해자 처벌강화하고 피해자 선제 보호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가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데이트폭력 살인사건 용의자' A씨가 도주 하루만인 20일 서울 중구 수표로 서울중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2021.11.20/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강수련 기자 = 최근 데이트폭력으로 인한 살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가해자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에도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30분쯤 데이트 폭력을 당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 A씨가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오래 전 헤어진 남자친구인 B씨(35)로, 이미 지난 7일 A씨로부터 스토킹(과잉접근행위)을 했다는 취지로 신고당했다. 또 범행 당시 법원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 정보통신 이용 접근 금지, 스토킹 중단 경고 등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A씨는 경찰이 제공한 임시숙소에서 지내다 지인의 집에서 머물렀고, 경찰은 9~18일 7회 정도 A씨의 신변을 확인했다. 그러나 잠시 자신의 집에 들렀을 때 찾아온 B씨에게 목숨을 잃었다. B씨는 현장에서 도주했으나 경찰의 추적 끝에 하루만인 20일 낮 대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검거됐다.

앞서 지난 17일에는 30대 남성인 김모씨가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했다.

김씨는 피해자가 이별을 요구하자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아파트 밖으로 던지기까지 했다. 범행 사실을 직접 신고한 그는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으며 19일 구속됐다.

당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김씨는 "혐의를 인정하고 유족분들께 죄송합니다"라면서도 "제가 집에 있는데 (여자친구가) 바람피웠습니다"라며 피해자 탓을 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서울 마포구의 오피스텔에서 황예진씨가 남자친구의 무차별 폭행으로 3주간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 결국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현재 가해자는 구속돼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C씨는 황씨의 오피스텔 1층 출입구 앞 복도에서 황씨 목, 머리 등을 10회가량 밀쳐 유리벽에 부딪치게 했고, 몸 위에 올라타 황씨를 여러차례 폭행했다. 이후 황씨가 뒤따라오자 주먹으로 수차례 때리고 이후 의식을 잃은 황씨를 엘리베이터로 끌고가며 바닥에 방치했다.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시신을 집 밖으로 던진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1.11.1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데이트 폭력' 인식 변화 절실…가해자 처벌 강화도

데이트폭력 범죄가 잇따르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아진 편이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더 가질 수 있도록 홍보와 교육이 수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데이트폭력 사건이 갑자기 급증했다기보다 최근 피해자 유족이 적극적으로 사건을 알리고 언론에서 다루면서 부각된 면이 있다"며 "데이트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의 끝은 살인이라는 걸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용납되거나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돼야 하고, 그에 대한 교육과 홍보도 정규과정을 통해서 알려져야 한다"고 했다.

가해자 처벌을 위한 지침이나 법률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곽 교수는 "데이트폭력의 개념 정의도 모호하고 처벌의 대상을 어디까지 삼을지 등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며 "단일법 차원에서 피해자-가해자의 관계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등 법적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서 변호사는 "폭행의 유형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법률체계를 마련할 필요는 없다"며 "수사기관의 수사지침, 법원의 양형 기준에서 데이트폭력의 경우 가해자에게 불리한 요소로 가중 처벌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 News1 DB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조치 필요해

A씨의 경우 경찰의 신변보호조치를 받고 있었음에도 범행을 막지 못했다는 지점에서 적극적인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A씨는 사망 직전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를 이용해 2차례 긴급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엉뚱한 곳으로 출동했다. 기지국을 중심으로 위치를 추적한 탓에 실제 위치가 잡히지 않아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를 구조할 시스템 중 하나인 스마트워치의 위치 시스템이 정확하지 않다는 걸 경찰이 알았다면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보호해야 했다"며 "지켜야 할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것은 국가 공권력의 책임"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스토킹 처벌법의 잠정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재범 우려, 피해자 위해 우려 등 요건에 따라 구속하는 등 피해자와 가해자를 일정 기간 완전히 분리하고, 가해자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도록 치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 변호사도 "데이트폭력이 강도 높은 사건으로 변하기 전 조짐이 있다"며 "피해자가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등 신호를 보내면 더 적극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스토킹처벌법이 피해자 보호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여성가족부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지난 11일부터 입법 예고했다.

법률안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스토킹 예방,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하는 책무가 규정됐다. 또 실태 조사와 스토킹 방지를 위한 인식 개선 등 예방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근거도 규정했다.

traini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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