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제보다 급하다", 한국군 최고의 개혁과제는 '이것' [박수찬의 軍]
대선 국면을 맞아 이대남(20대 남성)을 의식한 국방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선거철이면 단골로 등장하는 모병제 공약이 예전만큼 파괴력을 지니지 못하자 완전 모병제, 준모병제, 징모혼합제 등으로 변형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국방 공약만으로 향후 5년간 군을 진정한 강군으로 바꿀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지는 의문이다.
병역의무를 앞둔 20대 남성과 그들의 부모인 50대 이상을 의식한 공약만 제시할 뿐, ‘이대남들이 병역의무를 정말 폼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개혁과제는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낡은 장비는 과감히 버려라”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예비역들의 공감을 얻은 대사가 있다. “저희 부대에 수통 있지 않습니까. 거기 뭐라고 써있는지 아십니까? 1953(년).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오래된 장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한국군의 고질적 문제다.
최근 해병대 2사단 전차대대가 실시한 전차포 사격훈련에는 미국산 M48A3K 전차가 등장했다.
수명(25년)을 13~14년 이상 초과했고 잔존가치도 없어 ‘깡통전차’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이같은 전차는 일선부대에 수백여대가 남아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들여왔다가 1970년대 국내에서 모방생산한 90/106㎜ 무반동총은 미군을 비롯한 서방측 군대가 칼 구스타프를 비롯한 신형 장비로 교체한 것과 달리 여전히 육군에서 사용중이다.
육군 동원사단에 있는 105㎜ 곡사포는 수명을 최대 46년 초과했다.
공군 F-4, F-5 전투기도 마찬가지다. 1977년부터 도입된 F-4는 40여년째, 1980년대 국내에서 면허생산한 F-5는 30여년 동안 사용중이다. 2020년대 중반 KF-21 양산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일선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환경의 발달로 MZ세대는 밀리터리 온라인 게임과 드라마, 영화 등을 많이 접한다. 이들 컨텐츠에 등장하는 최신 장비에 익숙한 MZ 세대 장병들의 눈높이를 한국군의 노후 장비들이 충족할 수 있을까. 장병들이 자긍심을 지닐 수 있을까.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후 장비를 제때 퇴역시키지 못하는 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무기가 노후화되면 단종 부품이 늘어나면서 운영유지비가 급상승한다.
운영유지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면, 전장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신형 무기 도입에 필요한 예산 증가는 압박을 받게 된다. 이는 전체 국방예산에서 무기구매에 쓰이는 방위력개선비 비중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노후한 장비를 장기간 운용하는 것은 군 전투력의 질적 향상도 저해한다. 단종된 부품을 같은 종류의 장비에서 떼다 쓰는 ‘부품 돌려막기’가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 부품이 없으면 정비 시간이 늘어나고, 이는 훈련 시간의 축소로 이어진다. 군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낡은 무기를 빠르게 처분하고 신형 장비를 제때 도입할 수 있도록 국방획득체계와 장비 운영유지체계 등을 개선하는 작업이 차기 정부의 국방개혁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대선 국면에서 모병제가 많이 거론되는 것은 인구 및 군 구조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22∼2026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내년부터 상비병력은 50만명 수준으로 유지된다. 현역병 30만명, 간부 20만명으로 구성되는 군 구조에서 병사는 기본적으로 징병제에 기초해 충원이 이뤄진다.
하지만 인구 급감은 기존 징병제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현재 복무기간인 18개월을 유지하면, 통계청의 인구 추계로는 2037년부터 군에 입대할 청년이 부족해질 전망이다. 현재 수준의 병사 규모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우려가 높은 이유다.
현 정부의 병사 급여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 증가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병사 규모를 선제적으로 줄일 필요성도 거로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모병제를 시행하면 인건비 부담은 현재보다 급격히 증가한다. 한정된 국방예산 규모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자연스레 병사 정원이 감축된다. 모병제 시행이 군 규모의 대폭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병사 규모가 줄어드는 모병제 시행은 분단 상황에서 안보공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치권에서 모병제를 제안하면서 “병력은 줄어들어도 전력공백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부사관 등 간부 증원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도 이같은 논란을 의식했다는 해석이다.
간부 증원은 군 내에서도 긍정적인 기류가 있다. 일선부대 지휘관을 지낸 현역 장성은 “직업적인 프로 정신을 갖춘 간부가 늘어나면 지휘관의 부대 관리 부담 경감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군 간부를 증원했을 때, 이들이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하고 전역한 뒤 받을 군인연금의 적자도 늘어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거둬들이는 돈보다 나눠주는 금액이 훨씬 더 많고 빠르게 늘어나면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군 간부 증원을 추진하면, 군인연금 적자 규모는 당초 예상보다 더 늘어난다.
이렇게 늘어난 적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공무원 연금과 건강보험수지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고, 사학연금과 국민연금도 적자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군 간부 증원은 미래 세대에 군인연금 적자 보전이라는 부담을 떠안길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간부 증원 대신 병사의 정예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복무기간은 짧지만, 육군 병사를 특공여단이나 해병대 수준의 전투력을 발휘하도록 강하게 훈련시키고 대우도 지금보다 대폭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짧고 굵은 군생활’인 셈이다.
이대남이 대선의 향방을 가를 핵심 요소로 부각되면서 국방 분야 공약도 이대남이 관심을 갖는 모병제 등에 초점이 맞춰지는 모양새다.
병역의무 대상자와 가족 등을 포함하면 수백만 표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이같은 추세는 자연스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국가안보를 생각한다면, 한국군에게 가장 필요한 개혁과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군 통수권자라는 막중한 임무는 단순한 표몰이용 공약으로는 얻을 수 없다. 정치권이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치열한 고민을 거친 국방개혁안을 대선 국면에서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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