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발자국 찍고, 동네 음식 맛보고… ‘착한여행’으로 지역이 살다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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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차·쓰레기 투기·환경오염…
패키지·과잉관광에 원주민들 피해
광역·기초자체 등 17곳 조례 제정
단순 돈벌이 넘어 ‘가치 관광’시대
주민이 직접 기획, 관광객과 소통
지역균형개발·농어촌 활성화 계기
“일부 외지 자본이 장악한 상황에서
정부·지자체 적극적 관심·투자 필요
지역 차별화·중장기 로드맵 추진을”
대전 대덕구 계족산 인근에 사는 김모씨(60)는 연휴나 주말이 되면 외곽으로 나간다. 계족산 황톳길이 맨발 걷기 명소로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의 소음과 불법주차 등으로 몸살을 앓아 아예 집을 떠난다. 전주 한옥마을도 양적 성장 중심의 개발과 지역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업시설이 증가하며 원주민 이탈이 늘고 있다. 전남 여수의 ‘낭만포차’ 사정도 마찬가지다. 과거 가족단위의 오붓한 관광지였지만 유흥가로 변질되면서 주민들은 포장마차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관광이 산업으로 발전하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커졌지만 현지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관광객이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과잉관광’은 환경과 문화유산의 파괴, 교통체증, 소음공해 및 임차료·지대 상승 등 부작용을 낳았고 ‘관광혐오증’도 생겨났다. 이 같은 반발과 코로나19 팬데믹 대안으로 ‘공정관광’이 떠오르고 있다.
◆왜 공정관광인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관광객과 대기업 여행 서비스 위주의 관광 형태에 대한 반발이 시작됐고 지속가능한 관광 관련 논의가 지역주민 중심의 보다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로 확산되는 전환점이 마련됐다.
기존 관광산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지역의 삶을 존중하고 관광객과 주민이 상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관광 형태에 대한 고민에서 등장한 것이 ‘공정관광’이다. 지역과 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여행, 지역 자원을 활용해 이익을 최대한 지역에 환원하는 여행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지역에 기반을 둔 마을공동체와 마을기업, 사회적기업을 중심으로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지속가능한 관광 형태를 말한다.
관광의 부정적 이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주민과 관광이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관광에 주목하고 있다.
2018년 대전이 전국 최초로 공정관광조례를 제정한 이후 제주, 전북, 서울, 경북, 울산, 전주, 고양 등 각 지자체의 조례 제정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기준 공정관광조례를 제정한 곳은 광역지자체 8곳과 기초지자체 9곳 등 모두 17곳이다. 공정관광조례 제도화는 지난달 4일부터 시행된 개정 관광진흥법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
광주광역시는 남도 맛기행을 안내하는 공정여행가 육성에 나서고 있다. 공정여행가 과정은 지역 사람과 문화를 엮어 이야기가 있는 여행을 만들고, 여행을 통한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목포시는 머물다 가는 목포 공정여행을 운영하고 있다. 목포시민들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을 이용하면서 목포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맛보게 하고, 목포 사람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목포만의 특징을 담은 만든 물건을 구입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차박 성지’인 충북 충주시 살미면 수주팔봉은 기관과 주민, 관광객이 함께 환경을 지키며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사례다. 차박객들이 몰리면서 쓰레기 불법투기와 주차난 등 각종 문제로 폐쇄를 검토됐지만, 차박 총량제 도입 등을 통해 관광객·주민·자연이 함께하는 균형을 찾았다.
공정관광은 여행이나 관광 형태뿐 아니라 도시 재생이나 농촌 활성화 사업 등으로 확장하면서 단순 관광에서 벗어나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롱뇽, 참개구리 등 다양한 생물 개체가 서식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새봉은 한때 개발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현재는 공정생태관광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정관광이 지속성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공정관광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은 지자체일 수밖에 없다”며 “공정관광이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지역 균형개발, 농어촌 활성화, 도시 재생 등으로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도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최근 대전에서 열린 공정관광 포럼에서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중산층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공정관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윤리적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제도화되는 게 중요하다”며 “전국 지자체에서 공정관광조례가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며 사회 체계 속에 정착돼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장인식 우송대학교 교수는 “단순한 모방 수준의 프로그램 운영에서 벗어나 지역을 차별화하는 공정관광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방문객과 지역주민 간의 희망 조건을 충족시키는, 관광 공해 최소화를 위해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 추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광주·제주·충주·전주=강은선·한현묵·임성준·윤교근·김동욱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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