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우주 속 은하 '화석'을 찾아서

이영애 기자 2021. 11. 2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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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주목하는 반짝이는 별 대신 칠흑 같은 어둠을 들여다보는 연구자가 있다.

9월 28일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에서 만난 고종완 천문연 은하진화그룹 선임연구원은 밤하늘의 평균 밝기보다 수천 배 어두운 극미광(LSB) 영역에서 우주 탄생의 단서를 찾는다.

"쉽게 말해 하늘에서 은하 '화석'을 찾는 연구입니다. 은하 주변에는 수십억 년 전 형성된 단서가 있어요."

2017년 연구를 시작한 고 선임연구원도 곧 난관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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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문연구원 은하진화그룹
 

모두가 주목하는 반짝이는 별 대신 칠흑 같은 어둠을 들여다보는 연구자가 있다. 9월 28일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에서 만난 고종완 천문연 은하진화그룹 선임연구원은 밤하늘의 평균 밝기보다 수천 배 어두운 극미광(LSB) 영역에서 우주 탄생의 단서를 찾는다.

“쉽게 말해 하늘에서 은하 ‘화석’을 찾는 연구입니다. 은하 주변에는 수십억 년 전 형성된 단서가 있어요.”

은하 주변을 자세히 보면 은하보다 훨씬 덜 밝은 별들이 물결처럼 흘러들어 온 흔적이 있다. 수십억 년 전 은하 주변에 있던 작은 위성 은하가 병합되는 과정에서 부서진 잔해다. 이를 관찰하면 먼 과거의 은하 병합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흐린 눈으로 전체를 살피다

극미광 영역은 그동안 관측이 어려워 천문학에서 잘 연구되지 않는 분야였다. 2017년 연구를 시작한 고 선임연구원도 곧 난관에 부딪혔다. 더 어두운 부분을 관측하려면 직경이 큰 망원경이 필요했다. 미국 하와이에 스바루 망원경(구경 8.2m)이나 켁 망원경(구경 10m)이 있지만 매번 외국 장비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 선임연구원팀은 망원경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한정된 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망원경은 구경이 작아 분해능과 집광력에 한계가 있을 게 뻔했다. 대신 가까운 우주를 관측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특정 천체를 찾는 연구가 아닌, 하늘에 뿌려진 물질의 전반적인 패턴을 살피기 위해서는 꼭 고분해능 망원경이 필요하지 않다. 작지만 한 번 관측에 넓은 범위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작은 구경비(초점거리를 직경으로 나눈 값)의 망원경이라면 은하의 주변에 물질이 흩뿌려진 패턴을 파악하기 충분했다.

연구팀은 회절 한계와 지상 관측 조건을 고려해 이론적으로 구경이 큰 망원경의 해상도를 가지면서도 가까운 천체를 효율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경을 찾았다. 30cm였다. 여기에 거울의 반사 방향을 바꿔 빛이 가려지는 기존 반사망원경의 문제를 해결해 효율을 극대화했다. 또 한 번에 100초간 관측하는 대신 10초씩 10곳을 돌아가며 관측한 뒤 합치는 방식으로 노이즈를 최소화했다. 그렇게 어두운 천체 관측에 최적화된 망원경, K-DRIFT 시험모델이 탄생했다.

보현산 천문대에 설치된 국산 천체망원경 K-DRIFT 시험모델의 관측 장면. 크기는 구경 30cm가량으로 작지만 극미광 영역을 효율적으로 관측할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소외된 부분에 주목하다

K-DRIFT는 개발 과정도 험난했다. 고 선임연구원은 이번 프로젝트를 오직 국내 기술로만 성공시켜보고 싶었다. 우주 관측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국가는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K-DRIFT가 틈새시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연구비를 지원받을 땐 해외 연구기관이 포함되지 않은 게 오히려 불리했다. 결국 천문연 자체 과제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반사경(자유곡면 거울) 제작 업체를 찾는 것도 난관이었다. 반사경은 깎을 때 미세한 수준의 흔적만 생겨도 별 관측에 영향을 받기에 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수준으로 세밀하게 깎는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을 가진 회사는 손에 꼽았다. 연구비도 충분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린광학이라는 기업이 재료비만 받고 반사경을 제작해 줬다. 덕분에 2억 원에 망원경을 만들 수 있었다. 스바루 망원경 제작에 4000억 원가량이 든 것을 생각하면 큰 차이다.

처음 김윤종 선임연구원, 선광일, 한정열 책임연구원과 함께 4명으로 시작한 K-DRIFT 프로젝트는 15명으로 규모가 커졌고, 9년간 연구소의 추가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현재 K-DRIFT의 설계를 개선하고, 극미광 관측에 더 나은 방향으로 최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여러 대를 추가로 제작해 관측 범위를 넓혀나갈 예정이다. 가령 서로 다른 필터를 가진 K-DRIFT 두 대로 동시에 관측하면 정밀한 컬러 사진을 얻을 수도 있다.

“K-DRIFT의 관측 성능을 끌어올려 은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확인해 보는 게 목표예요. 아직 실체가 불분명한 암흑물질의 분포도 극미광 관측으로 추적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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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11월호,  암흑 우주 속 은하 ‘화석’을 찾아서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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