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는 죽음 [조성진 박사의 엉뚱한 뇌 이야기]

노희준 2021. 11. 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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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뇌 이야기를 합니다. 뇌는 1.4 키로그램의 작은 용적이지만 나를 지배하고 완벽한 듯하나 불완전하기도 합니다. 뇌를 전공한 의사의 시각으로, 더 건강해지기 위해,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어떻게 뇌를 이해해야 하고, 나와 다른 뇌를 가진 타인과의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함께 탐구해보겠습니다. 일주일 한번 토요일에 찾아뵙습니다.

[조성진 순천향대 부속 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신경외과 의사로서의 삶을 살면서 참으로 힘들었던 것은 모든 분들을 살리지 못하는 의학의 한계를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자라는 직업은 굉장히 많지만 판-검사, 의사, 변호사의 세가지 직업만 예를 들면 ‘사’자의 한문은 각기 다르다. 판-검사의 ‘사’는 일 사(事))자 이다. 공적인 일은 하는 직업이라는 의미이다. 변호사의 ‘사’는 선비 사(士)로 공인기관에서 인정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의미한다. 의사는 스승 사(師)로 선생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말로 흔히 의사 선생이라 되는 듯 하다.

‘사’자라는 직업의 특징은 남의 인생에 끼어 들어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잘 나가는 사람도 구속할 수도, 감옥을 보낼 수도 있고, 감옥에 갈 사람도 구해낼 수 있다. 의사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며 그 것도 모자라 수술실로 환자를 옮겨 뇌를 열든지 배를 가르든지 한다. ‘사’자의 삶처럼 남의 인생 중간에 끼어들어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직업은 고도의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또한 그런 행위에 따른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특히 의사는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는 모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르는 것은 연구해서 알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하므로 의대 교수의 어깨는 참 무겁다. 살리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떠나 보내는 경우가 많고 그분의 가족들의 슬픔을 가슴으로 느끼며 마음이 아팠던 적이 많았다. 생명을 잃는 많은 환자를 곁에서 지켜보며 삶과 죽음은 백지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의 삶은 유한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대부분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는 듯 하다. ‘서경’의 ‘홍범편’에서 오복 중 마지막 복은 ‘고종명’이라 하였다. 고종명은 죽음을 깨끗이 하자는 소망으로, 모든 사회적인 소망을 달성하고 남을 위하여 봉사한 뒤에는 객지가 아닌 자기집에서 편안히 일생을 마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오복)]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 세상에는 죽음과 세금 외에는 아무것도 확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 유명한 말처럼 죽음과 관련된 걱정이 때때로 우리를 휩쓸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마지막 한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할 때 모든 사람은 자기의 삶을 정당화한다. 재산을 축적한 사람은 평생 돈을 많이 번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사회와 인류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은 평생 부를 축적하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에 삶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모두에게 죽음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입구에서 볼 때는 한 없이 멀고 아늑하다, 하지만 그 출구에서 볼 때는 오히려 너무 짧다’고 하였다. 또한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한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야 말로 신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심장의 박동이 멈추면 뇌로 혈액 공급이 차단되어 뇌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뇌는 10분간 산소 공급을 받지 못하면 뇌세포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뇌가 죽는 ‘저산소 뇌증으로 인한 뇌사’로 진단된다. 뇌사는 자가호흡이 없고, 심장 박동만 할 뿐 뇌세포는 완전히 기능이 상실되어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뇌사 상태에서는 타인에게 장기이식이 가능하다.

뇌사라는 상태는 완전 혼수상태에서 자가 호흡이 없고, 뇌간의 기능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뇌파를 측정하였을 때 뇌파가 완전 소실된 상태를 말한다. 병원에서 철저한 검사를 통해 소생이 불가한 상태인 뇌사 상태로 판정 받은 환자는 보호자의 동의 후에 장기이식을 할 수 있으며 신장, 간, 췌장, 폐등을 포함한 8개 장기를 이식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장기이식 수술은 기증자 및 수혜자 양측 당사자의 자율적인 결정에 의해 행하여 장기기증은 도덕적으로 선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자비나 희생은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뇌사 상태가 실질적 사망 상태가 아니라는 의학적 판단에 의해 장기기증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뇌사 상태의 환자가 2주 이상 살 수 있는 경우는 희박하다. 현대의학은 이를 근거로 하여 뇌사를 의미하는 뇌기능 전체의 불가역적 상실을 심장사와 동일시한다.

죽음은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삶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자발적인 의사를 근거로 한 뇌사자의 장기제공은 새로운 건강과 행복을 되찾게 되는 불치병의 환자에게는 생명의 자발적인 희생을 대가로 주어진 존엄한 선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진정한 가치 있는 죽음으로 존경 받아야 마땅하다.

노희준 (gurazi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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