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20대가 아직도 '무야홍' 외치는 이유

봉달호 편의점주 2021. 11. 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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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엔 아파트도 못 사고..
세상에 대한 불만 홍준표에 투영
20대 "우린 이쪽 저쪽 다 싫어"
통합, 어디부터 할지 돌아봐야

“홍준표가 뭐가 그리 좋아?” 스물셋 서준씨 대답은 딱 세 글자였다. “무야홍!” 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뜻이다. ‘내가 홍준표가 좋다는데 무슨 상관이세요?’ 하는 눈빛이었다. 지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는 여론조사에서는 이겼으나 당원 투표에 패해 끝내 후보가 되지 못했다. 서준씨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당신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2021년 11월 2일 오전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가 '승리를 위한 특별기자회견'을 가진 뒤 한 청년 지지자의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그런데 서준씨가 ‘정말로’ 홍준표를 좋아해 무야홍을 외쳤던 것일까? 이런 말을 하면 또 ‘꼰대’ 소리 듣겠지만, 홍준표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것 같았다. 정치에 아주 관심 많은 20대가 아닌 이상, 10년, 20년 전 홍준표가 어땠는지 ‘그때의 느낌으로’ 알겠는가. 그저 세상에 대한 불만을 무야홍에 투영하는 모양이랄까. 이쪽저쪽 다 싫은 20대 청년층의 제3지대 아이돌이 홍준표였던 셈이다. 현상을 뭉뚱그려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편의점을 운영하다 보니 20대를 많이 고용하게 되고, 계산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 또한 다른 업종에 비해 많다. 그러면서 느끼는 점은, 요즘 20대는 나 같은 X세대보다 훨씬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때’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얕은 기대라도 가졌지만 지금은 희망의 바늘구멍이 숫제 사라져 버렸다. 우리 때도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차이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단한 격차라고 생각진 않았고, 우리 때는 그래도 은행에 적금 넣고 허리띠 졸라매면 아파트쯤 살 수 있다 여겼다. 지금은 로또에 당첨되거나 코인이 대박 나지 않는 한 이번 생에 아파트는 어렵게 되었다. 대출은 꿈도 못 꾼다. 20대는 이것을 ‘자기들은 실컷 올라가 놓고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여긴다.

우리 때는 세상 물정 모르는 말일지언정 “서로 사랑하면 됐지 조건은 왜 따져?”라고 결혼을 대했고, 알콩달콩 복작이며 아이 낳고 사는 것을 행복이라 여겼다. 지금 20대에게는 그런 말을 차마 꺼낼 수 없다. 사실은 나보다 훨씬 냉정한 현실 인식을 갖고 있어 서늘함을 느낄 때가 많다. 게다가 20대 남자들은, 이제야 남녀가 점차 동일 선상에 서는 것처럼 보이는데, 남성에 대한 가부장적 책임을 묻는 문화는 여전한 것 같아, 그것을 일종의 역차별로 받아들인다. 지난 세대는 어우렁더우렁 살았으면서 왜 우리만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느냐고 분하게 여긴다. 우리 때가 ‘정치 혐오’였다면 요즘 20대는 ‘세상 혐오’쯤이랄까.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는 각자도생의 각오로 살아간다. 그렇게 그들은 ‘산골’로 갔다.

정치권에서는 MZ(밀레니얼+Z세대)를 민지, 민준, 민진이라 부르면서 가스라이팅하듯 구애한다. 그러나 MZ는 ‘밑진’ 세대다. 애초에 손해 보고 태어난 인생이라 한탄한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그들의 바늘구멍을 열어주고 사다리를 다시 세워주지 않으면 쉬이 돌아오지 않을 마음이다. 다가오는 대선은 20대와 자영업자들의 표심이 결정하리라 내다본다. 이들의 공통점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장 고통받는 세대와 계층이라는 사실이다.

윤석열 선대위에 ‘국민통합위원회’를 만든다는 말이 들린다. 위원장으로 민주당 출신 정치인이 거론된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그 통합 소리 지겹다. 아직도 국민 통합을 영호남 화합 정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 또한 고색창연하다. 현 시기 국민 통합이 간절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돌아보지 않는다면, 윤석열은 홍준표에게 사실상 패했고, 내년 3월 9일 저녁에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지 않을까. 서준씨는 오늘도 갈 곳 없이 ‘무야홍’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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