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탱자 같은' 산문의 매력

이기문 기자 2021. 11.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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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

강운구 등 23명 지음|박미경 엮음|봄날의책|220쪽|1만2000원

작고 노란 탱자는 귤과(科) 열매지만 귤처럼 맛이 달콤하지 않다. 그렇다고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않아서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산문가 박미경은 자기가 엮은 선배 문인·예술인 23명의 산문을 “탱자 같다”고 말한다. 소설가, 시인, 화가, 사진가 등이 쓴 산문은 본업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러나 탱자만이 낼 수 있는 향기가 있듯, 이들 글에는 “아름다운 향과 색과 촉”이 있다.

시인 백석·오규원·이상·장석남, 소설가 박완서·오정희·윤후명, 음악가 황병기, 화가 김용준 등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산문을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찬 바람 부는 늦가을이어서인지 고독과 죽음을 다룬 수필들이 눈에 띈다. 혼자 사는 시인 함민복은 홀로 먹는 찬밥을 바라보다 어머니를 기린다. 중학생 때 그는 환갑 넘은 아버지를 따라 산일을 하러 갔다. 더덕 캐는 재미에 빠져 예정을 넘겨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차려놓은 음식이 식어 있었다. “몇 번을 데웠던지 졸고 식은 된장찌개는 짰다. 어머니는 산에 간 두 부자가 달이 떠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서 오래전에 마중을 나와 계셨던 것이다.”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은 열일곱 나이에 세상을 떠난 둘째 형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첫돌이 되기 전 형이 죽었기 때문이다. 권정생은 자장가 대신 어머니의 구슬픈 타령을 들으면서 자라야 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죽은 형을 호명한다. 권정생은 예술로서 뇌리에 박힌 죽음을 생명으로 향하게 했다. “내 가슴에 살아 있는 형님은 끊을 수 없는 반려자이며 내 사랑하는 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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