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가사문학관에 가서 '환벽'을 보다
만추도 삶의 사연도 모두 '환벽'
광주송정역은 옛날에는 송정리역이었다. 무엇이든 옛날이 더 좋았지만 이 근처에는 옛날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농협 창고같이 커다란 저 건물은 큰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여기서 차를 빌려 타기로 한다. ‘송정리’에서 가사문학관까지는 차로 한 시간가량이다. 교통편이 마땅치 않다. 궁리 끝에 머리에 스친 것이 쏘카다. 작은 차로라도 왕복하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용산에서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차를 탔다. 그 앞에 다섯 시 십 분 차도 있지만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요즈음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런저런 일에 고장난 기계, 트럭에 실려 다니듯 한다. 코로나로 열하루 입원, 앞뒤로 열흘, 보름씩 아무것도 못 했다. 9월부터 모든 것이 헝클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음영’이라 해서 읊조린다는 가사의 연속체 음률을 따라, 덴동어미화전가는 말미에서 ‘봄 춘 자’ ‘꽃 화 자’의 무한히 반복될 것 같은 기쁨과 즐거움의 ‘환영’을 제공한다. 인생은 바로 이 ‘환영’ 때문에 살 만한 것임을, 덴동어미화전가처럼 실감나게 가르쳐 주는 작품이 없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보석반지’라는 제목을 가진 이야기다. 하지만 낯선 이국 여인의 보석반지 이야기는 결코 덴동어미화전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두 해 만에 다시 보는 가사문학관은 코로나 광풍을 견디고 건물도, 사람도 무사하다. 나는 발표를 앞두고 이 ‘가사문학면’에 붙어 있는 ‘남면’에 간다.
만추, 만추 하는 담양은 남면도, 소쇄원도 모두 쓸쓸한 가을빛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식영정, 그림자가 쉬는 정자는 여전히 아름답다. 가슴에 파고드는 것은 그런데 오늘은 ‘환벽당’이다. 푸르름이 고리를 이루듯 연결된 산들을 바라보는 이 환벽당(環碧堂)이 오늘은 어째서 벽으로 둘러쳐졌다는(環壁) 뜻으로 들릴까.
이 아름다운 만추가 벽이요, 삶의 사연도 모두 ‘환벽’인 것 같다. 내 삶은 지금 벽으로 둘러쳐져 있다. 내가 지금 이 담양의 문학관에 왔다 가는 사연도 환벽이요, 면벽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도 삶에서는 공부 아닌 것이 없다. 몹시 지쳤지만 공부는 포기할 수 없다. 혜암 스님께서 공부하다가 죽으라고 하셨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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