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예산 심의서 국회가 해야 할 일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2021. 11. 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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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2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2년 예산은 총 604조4000억원으로, 2021년 본예산 대비 8.3% 증가했으나 추경 대비로는 0.8% 감소한 규모이다. 그런데 여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제안한 전 국민 방역지원금 문제로 국회 심의과정에서 여당과 예산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충돌하고 있다. 여당은 예상되는 추가세수로 국민 1인당 20만원의 방역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으며, 2022년 예산안에 이를 반영해 1월부터 즉시 지급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추가세수는 소상공인 손실보상과 국가채무를 줄이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부 예산안은 정책 실행 계획의 민낯을 보여준다. 화려한 정치적 수사로 특정 정책을 홍보하더라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장난’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산안은 정부 정책의 진정성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이며, 국회의 심의과정은 정부의 정책 집행을 위한 정치과정이다.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여야의 충돌은 이런 정치과정에서 발생하는 흔한 현상이나, 여당과 행정부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청와대의 정책조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 예산안을 평가할 때 중요한 지점은 꼭 필요한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출 계획이 제대로 잡혀 있는가이지, 재정적자나 국가채무 수준 자체는 아니다. 필요한 정부 지출 때문에 재정적자나 국가채무 수준이 우려된다면 증세와 같은 세입 증가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또 정부와 여당이 증세보다 국가채무 증가를 선택할 여지가 큰 제도적·정치적 환경이라면, 예산준칙을 도입해 정치권이 이런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날 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다. 물론 적정한 재정적자나 국가채무 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나, 이에 대한 공개적인 논쟁은 필요하다.

2022년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정부가 투자 중점으로, 탄소중립·디지털 전환 등 미래형 경제구조 대전환에 12조원과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맞춤형 재도약 지원에 3조9000억원 등을 포함시켰다. 그런데 과연 이 정도의 예산과 세부사업들로 탄소중립·디지털 전환의 초석을 놓을 수 있을지 그리고 소상공인의 재기를 돕기에 충분할지 의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생존 위기로 내몰린 소상공인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민주당은 10조원 정도를 전 국민 방역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직접적으로 소상공인의 손실보상을 위해 사용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국민의힘은 대통령 당선 후 추경으로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위해 50조원을 마련하겠다고 이야기하기 이전에, 올해 본예산 심사에서 이에 대한 대규모 증액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에 대해 여야 정치권이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2022년부터 이에 필요한 예산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2022년 예산안에 탄소중립·디지털 전환 등을 위해 12조원을 배정했으나, 세부 항목을 뜯어보면 이전부터 하던 재생에너지 보급확대, 친환경차 전환 가속화, 탄소중립 기술개발, 신유망산업 육성 등의 예산을 확대해 재배치한 정도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지난 10월에 발표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의 구체적인 세부 실행 계획과 이에 필요한 재정 수요에 대한 추계조차 없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예산이 향후에 필요하며 2022년 예산에는 얼마가 반영되어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내년 예산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2030 NDC 상향안’이 남은 8년간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부터라도 국회가 예산 심의과정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내용은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에 대한 예산이다. 이를 통해 여야 대선 후보 누구도 먼저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의 사회적·재정적 비용과 이를 감수하고도 갈 수밖에 없는 길임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회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향후 30년 동안 가장 중요하게 다뤄질 정책 문제를 현재의 대선 어젠다로 만들고, 차기 정부가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놓게 된다. 정치 불신과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비호감이 여느 때보다 높은 이유가 정치인이 국민을 ‘바보’ 취급한다는 점을 국민이 알고 있기 때문임을, 정치인들도 깨달을 때가 되지 않았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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