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해외 선물]② 유튜브만 틀면 나오는데..왜 잡지 못할까?
취재진이 만난 박 모 씨는 형의 유서를 보여줬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 큰 시련"이라며 "연로한 어머니가 제일 걱정이 되고,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 2억 원이 넘는 빚을 어디에서 어떻게 빌렸는지와 함께 "부담만 남기기고 떠나 죄송하다"는 내용도 남겼습니다.
박 씨의 형은 어쩌다 이렇게 큰 돈을 잃은 걸까.
박 씨의 형은 한 BJ가 유튜브를 통해 홍보하는 해외 선물거래에 투자했습니다. 박 씨는 계좌 입출금 내역을 통해 형이 BJ를 거쳐 사설 선물거래 업체에 5억 원을 넘는 돈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박 씨가 고소하자 BJ는 관련 영상을 모두 내리고 잠적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박 씨가 홍보해 온 사설 선물거래 업체는 여전히 다른 BJ들을 내세워 영업 중입니다.
같은 업체의 주식 거래 프로그램과 계좌번호를 사용하고 있는 BJ가 7명 더 확인됐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모집책이 활동하고 있을 거로 추정된다는 게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의 판단입니다. 실제 올해 초 경찰에 적발된 한 사설 선물 거래 업체는 모집책만 28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5분 만에 HTS 프로그램 전송…조회해보니 '미등록' 불법 업체
대다수 피해자는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 의외로 쉬워 보여서, 또는 블로그나 카페 글을 보고 혹해서 모집책에게 연락했다가 사설 해외 선물거래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취재진도 BJ가 소개하는 핸드폰 번호로 문자를 보내봤습니다. 실시간 방송을 하는 와중에도 곧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이메일 주소가 포함된 개인정보를 적어 보내자 곧바로 선물 거래를 할 수 있는 사설 HTS(홈트레이딩시스템) 프로그램을 보내옵니다. 입금 계좌를 만든 뒤 20분 이내에 송금하지 않으면 거래가 안 된다며 입금을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업체명은 메일 주소에 적혀있었습니다. 정식 인가를 받은 업체인지 금감원 사이트에서 조회해 보자 검색이 되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미등록 불법 업체였던 겁니다.
"증권사 계좌랑 연동돼서 매매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전혀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여기는 안전하고 증권사랑 연동돼 있다고 강조하고, 방송하면서 (방송진행 BJ의)할아버지도 출연을 잠깐 했었어요. 그러니까 믿고 한 거죠. " (7억 원 피해자)
"지금도 유튜브 계속 버젓이 하고 있는데 (실시간 방송 보고 댓글 다는)시청자들도 다 허위예요. 사람들은 허위인지 몰라요. 누가 많이 보고 있으니까 '설마 누가 이 사람들이 다 사기 치겠어?'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5억 원 피해자)
불법 업체가 저렇게 버젓이 운영하고 있는데도 단속하는 기관은 전혀 없습니다. 피해가 끊이지 않자 지난해 국감에서도 문제로 지적됐지만, 금감원과 경찰 모두 피해 규모조차 추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감독' 기관이라는 이유로 미등록 업체는 단속할 권한이 없는 입장이고, 경찰은 고소 건별로 개별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3개월마다 자료 없애…유튜브 협조만 6개월"
사설 선물거래 업체들이 이렇게 '대놓고' 영업을 하고 있어도 경찰이 잡기 힘든 이유는 해외서버와 우회 프로그램을 통해 IP 추적을 어렵게 하는 방법으로 단속을 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업체들은 3개월 마다 모든 정보를 '리셋'합니다. 업체명과 대포계좌, 대포폰을 3개월에 한 번씩 바꾸고, 수시로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업체를 잡으려면 3개월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건데, 가장 큰 걸림돌은 유튜브의 비협조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구글 측에 유튜브 계정 운영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협조 요청을 보내도 6개월 안에 자료를 받을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 "안타깝지만 예방만이 최선"…"신고 포상금 제도 검토해야"
전문가들은 이런 불법 업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다른 식의 단속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채널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는 데다, 하나를 막으면 또 다른 불법 서비스가 나타나고 있다"며 "신속하게, 또 적시에 불법 업체를 찾아서 처벌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연구위원은 "기존의 인력으로는 지능화된 범죄를 적발하고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제보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불법 업체를 줄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써는 예방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며"이라며 "금감원 사이트에서 제도권 금융 회사를 조회하면 인가를 받은 업체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관기사] [불법 해외 선물]①"실제 거래 없고, 손실 커지도록 유도"...'불법해외선물거래' 업체·BJ 돈 번 비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6170)
조정인 기자 (row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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