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 쉬워 놀랐다"..일본 외교관 편지 발견

유성재 기자 2021. 11. 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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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년 전인 1895년 10월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관련해 당시 여기 가담했던 일본 외교관이 쓴 편지가 최근 발견됐습니다.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히 시해된 다음 날인 1895년 10월 9일, 당시 일본 영사관보로 조선에서 근무하던 외교관 호리구치 구마이치가 고향 니가타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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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26년 전인 1895년 10월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관련해 당시 여기 가담했던 일본 외교관이 쓴 편지가 최근 발견됐습니다. 왕비 시해가 생각보다 쉬워 놀랐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습니다.

도쿄 유성재 특파원입니다.

<기자>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히 시해된 다음 날인 1895년 10월 9일, 당시 일본 영사관보로 조선에서 근무하던 외교관 호리구치 구마이치가 고향 니가타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왕비를 살해했다'고 붓으로 휘갈겨 쓴 문장이 선명합니다.

담장을 넘어 드디어 궁궐 안쪽에까지 도착했다며 시해 당시 자신의 행동을 상세히 기록하고, "예상 외로 쉬워 오히려 놀랐다"는 뻔뻔한 감상까지 적혀 있습니다.

호리구치는 을미사변을 전후해 이 편지를 포함해 모두 8통을 고향에 보냈는데, 명성황후 시해 정황을 묘사한 편지 1통만 이중 봉투로 밀봉돼 있었습니다.

호리구치는 이듬해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가담자로 일본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정직 1년이라는 가벼운 처분만 받았습니다.

이 편지는 나고야의 한 고문서 연구자가 최근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해 재일사학자 김문자 씨에게 해석을 의뢰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습니다.

지난 2009년 '조선왕비 살해와 일본인'이라는 책을 낸 김문자 씨는 이 신문에 "현역 외교관이 부임지의 왕비 살해에 직접 관여했다고 알리는 내용에 새삼 놀라움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0년에는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일본 공사 미우라가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진상보고를 차단했다는 일본 외교관의 당시 회고록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 저작권 관계로 서비스하지 않는 영상입니다.

(영상취재 : 한철민·현진, 영상편집 : 소지혜, 사진출처 : 일본 아사히신문) 

유성재 기자ven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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