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검사선서를 생각하다

김경욱 2021. 11. 16. 18: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프리즘]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 프리즘] 김경욱ㅣ법조팀장

검사들이 임용 때 하는 ‘검사 선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됐다. 그 이전까지는 검사 선서가 없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의사들처럼 검사도 별도의 선서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하면서, 검사 선서에 관한 규정이 마련됐다.

“(전략)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대한민국 검사들, 참으로 수고가 많다. 선서도 해야 하고, 법에 규정된 직무 관련 조항도 따라야 한다. 검찰청법에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중략)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일하는데, 무슨 다짐이 이렇게나 많이 필요한가. 그냥 하면 되지’ 싶겠지만, 검사는 실로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발사주 의혹 등 최근 논란이 되는 사건들을 보면, 이런 바람은 더욱 간절해진다. 검찰은 지난해 총장의 ‘눈과 귀’ 구실을 하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을 통해 범여권 인사와 언론인들의 고발장을 작성한 뒤, 이를 야당에 전달해 고발을 사주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발장 전달자로 지목된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고, 지난해 그와 함께 일한 검사 2명도 최근 추가 입건됐다. 고발장 전달자로 공수처 소환 조사를 받은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해 4월3일 고발장을 당쪽에 전달하기 두달 전까지만 해도 현직 검사였다.

이 의혹의 핵심은 공익의 대표자이자 직무를 수행할 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검찰이 당시 총선에 영향을 주고 총장을 ‘보위’하기 위해 야당에 고발을 사주한 국기 문란이자, 헌정 유린 사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손 검사 등 사건 관련자들이 사실상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하면서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의혹만 키우고 있다. 여권 등을 중심으로는 고발장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그의 부인 김건희씨 등이 피해자로 적시된 점을 들어, 당시 윤 총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의심은 고발장이 전달되기에 앞서 이뤄진 대검의 조직적 움직임과 맞물려 더욱 커지고 있다. 같은 해 3월 대검은 윤 총장 장모 최아무개씨를 둘러싼 은행 잔고 증명서 위조 의혹 등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되자, 최씨 사건 관련 문건(장모 문건)을 만들고, 권순정 당시 대검 대변인은 이 문건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전파했다는 점이다. 이들 사건을 놓고 검찰이 사실상 총장 개인과 가족을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관련 의혹의 정점에 있는 이가 현재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는 점이다. 불과 8개월 전 검찰총장으로서 ‘정치적 중립’과 ‘공정한 법집행’을 외치던 이가 이제는 ‘정권 교체’와 ‘국가 대개조’를 부르짖고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다.

윤 전 총장은 2019년 7월25일 검찰총장에 취임하며 이렇게 말했다. “형사 법집행은 (중략)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 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지난해 3~4월, 그의 지휘 아래에 있던 대검 상황도 그러했는지 의문이다. 윤 전 총장을 둘러싼 ‘검찰 사유화’ 의혹의 한가운데 있는 전·현직 검사들은 후배들이 손을 들고 맹세한 검사 선서를 기억하기 바란다.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기보다는 불의와 타협하고, 진실만을 따라가기보다는 진실을 은폐하고,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섬긴 대상이 과연, 누구였는지.

das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