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80] '마음 은행'에 찾아오는 섭섭함이란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1. 11.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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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한 마음’으로 힘들다며 상담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직장에서 느끼는 섭섭함이다. 예를 들면, 후배를 믿고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알려주고 키웠는데, 어느 날 불쑥 바로 옆 경쟁사로 옮긴다 하니 섭섭함을 넘어 배신감마저 든다는 것이다. 요즘은 첫 직장이 ‘평생 직장’이란 생각이 과거보다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이직도 흔한 현상이나, 평생 직장 개념으로 일한 리더로선 섭섭하고 적응하기 어렵다. ‘내 사람을 키운다는 생각은 버리고, 다른 회사로 이직해도 국가 발전엔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마음으로 후배를 키워야 한다’는 한 대기업 임원들의 체념 섞인 말이 기억난다.

섭섭함의 국가 대표는 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섭섭함이다. 결혼하라는 말에 발끈하는 자녀부터 결혼 후 연락이 뜸해진 자녀까지 섭섭함의 스펙트럼이 넓고도 넓다. 사실 대가를 바라고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잘 커서 독립하면 그만이지 무얼 바라나’ 하며 부모는 본능으로, 의무로, 사랑과 희생으로 자녀를 돌본다. 그런데 막상 자녀를 키우고 나면 기대도 생기고 이에 따른 섭섭함도 찾아온다. 실제로 자녀에 대한 섭섭한 감정 때문에 우울증에 이르는 경우도 흔히 있다. ‘생일에 자식 집에 초대받아 케이크에 생일 축하 받고 싶은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이냐’고 호소하는 이도 있다.

왜 섭섭할까? 마음이 봉사 단체가 아닌 금융기관처럼 작동한다는 주장이 있다. 마음이라는 은행이 제공하는 사랑, 희생, 배려, 코칭 같은 서비스가 대출 상품이라는 것이다. 원금에 이자까지 원하진 않아도 백이란 사랑을 주었으면 팔구십 정도는 베푼 애정을 돌려받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리사랑’이란 대출 상품의 특징이, 원금 회수가 만만치 않다. 특히나 부모의 자식 사랑은 잘해야 20% 정도 돌려받지 않을까. 손해를 보아도 내리사랑이란 본능이 있었기에 인류가 현재까지 생존하지 않았나 싶다.

내일모레 수능이다.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수험생 자녀와 학부모 모두 고생이 크셨다. 대상이 사람은 아니지만 섭섭함이 항상 남는 것이 시험 아닐까 싶다. 최상의 결과를 기대했기에 중간 정도 결과에도 섭섭한 마음이 찾아온다. 또 중요한 시험일수록 긴장감 탓에 아는 문제를 틀릴 수 있어 거기에도 아쉬움이 든다. 시험 보고 오는 자녀와 기다리던 부모가 우선 서로 수고했다며 꼭 안아주고 아쉬움을 위로하면 좋겠다.

이직 인사를 하는 후배에게 무어라 해주면 좋을까? 섭섭한 맘은 누르고 ‘인생 친구 하자’고 말하면 어떨까 싶다. 일로는 헤어지지만 친구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원금 회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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