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종' 그리는 아이들

송용준 2021. 11. 15. 23: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서 저학년을 상대로 방과 후 미술을 가르치는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 아이에게 그림을 잘 그렸다고 칭찬했더니, 그 아이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림 한쪽 구석에 '종'을 그리더라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잘 그렸다고 칭찬받은 그림이니 많은 유튜버가 말하는 '구독'과 '알람 설정', 그리고 '좋아요'를 자기 그림에도 해달라는 뜻이 담겼다는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서 저학년을 상대로 방과 후 미술을 가르치는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 아이에게 그림을 잘 그렸다고 칭찬했더니, 그 아이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림 한쪽 구석에 ‘종’을 그리더라는 것이다. 뜬금없는 행동에 지인은 당연히 왜 종을 그렸느냐고 물었고 들려온 답이 걸작이었다며 크게 웃었다.

종의 의미가 다름 아닌 유튜브의 구독을 의미하는 표식이었다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잘 그렸다고 칭찬받은 그림이니 많은 유튜버가 말하는 ‘구독’과 ‘알람 설정’, 그리고 ‘좋아요’를 자기 그림에도 해달라는 뜻이 담겼다는 것이다. 기자의 어린 시절 ‘참 잘했어요’라는 문구가 담긴 선생님의 칭찬 도장의 역할을 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종이 대신한 셈이다.
송용준 문화체육부 기자
이 얘기에 나도 껄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어린이들이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에 많이 빠져 있다는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중 1위가 연예인도 아닌 유튜브 같은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꼽혔다는 사실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런 세태를 두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며 사회성을 기르고 독서를 통해 소양과 상상력을 키워야 할 때 컴퓨터와 스마트폰에만 매몰돼 게임과 SNS에만 빠져 지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기성세대를 넘어 ‘꼰대’로 가고 있다는 게 주변 젊은 세대들의 비판이기도 하다. 달라진 세대의 정서를 이해하려면 SNS가 그들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소통의 방식이고 한 지역, 한 국가가 아닌 전 세계와 직접 만나는 통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유튜브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을 전 세계 친구들에게 보여주려면 많은 연구와 관찰이 동반된 준비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현실과 떨어진 저 먼 나라 ‘사이버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인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로부터는 최근 ‘메타버스’라는 가상 공간이 앞으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영역으로 등장할 것인데 지금 젊은 세대들의 SNS 활용 방식이 그 중간 단계 어디쯤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도 들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주장이나 조언이 SNS의 긍정적인 측면만 크게 강조한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칭찬을 들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종’이 된 상황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결국 한 아이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특정 SNS가 만들어주고 틀로 짜놓은 양식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SNS에서는 최근 짧은 동영상이나 한 장의 사진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할 경우가 많기에 요즘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행동 양식이나 유행의 흐름이 점점 짧아지고 압축되는 양상으로 흐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가끔은 긴 호흡도 느린 움직임과 생각도 필요하기에 잠시 유튜브 대신 고전을 읽는 아이들도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아직 난 ‘종’ 그리는 아이가 낯설다.

송용준 문화체육부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