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이대남도 이대녀도 주인공이 되는 선거

- 2021. 11. 1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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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윤석열, 이대남 표 공략
자칫 이대녀 대한 무관심 불러
계층·성별 넘어선 정책 내놔야
한국 정치 한 단계 더 발전 가능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원내 1당과 2당의 대통령 후보가 정해지면서 모든 국민의 관심은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로 쏠려있다. 선거란 잔인한 정치행위이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는 양 진영은 물론 지지하는 국민에게 그야말로 ‘다걸기’(올인)할 수밖에 없는 국가적 행사이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한 표라도 더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과 비책이 난무한다. 여러 명의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고 단일화라는 예측불가 상황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상 양자 대결이라는 점에서 내가 상대방 후보 한 표를 뺏어오면 실질적으로는 두 표의 효과가 있기에 득표 전략 마련에 주요 양당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이 과정에서 지역, 성별, 세대, 문화 등 다양한 계층 요인을 활용해 목표 집단을 선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운동을 진행한다. 이러한 시도는 일면 타당해 보이나 사회의 다원성을 감안하면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개인 단위로 보았을 때 사람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다. 가령 동료교수 A는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후반 남자이며 아들 2명을 둔 가정의 일원이다.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고 경제는 보수적 관점, 대북 관계는 진보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특성에 따라 집단을 구분하는 전략은 자칫 빙산의 일각만 바라보는 격이 될 수 있다.

개인을 넘어 집단의 측면에서 보면 코호트별 경험의 차이로 복잡성은 더욱 커진다. 중장년층인 40~50대를 생각해보자. IMF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에 취업을 한 사람과 그 이후 취업을 한 사람은 직장의 안정성에 대해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다. 1987년 민주 항쟁을 대학생 시절 경험한 사람과 초등학교 때 경험한 사람은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다를 가능성이 높다. 즉 유권자를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나눌 수는 있지만, 이러한 집단의 설정이 내포된 역사성을 반영하지 못하면 오히려 정치적 목적을 위한 편가르기 프레임에 전용될 수 있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가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이대남 의식’, ‘호남 민심 얻기’ 등과 같이 어느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이 주목받고 있다. 물론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부동층이 많거나 자신의 지지율이 낮은 집단을 공략하는 선거운동은 불가피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프레임이 선거의 중심에 계속 등장하면 선거운동에는 일면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국민 통합이라는 궁극적인 정치의 존재 가치적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양 후보 진영은 이대남을 이번 선거의 캐스팅 보트로 보고 표심 확보에 여념이 없다. 이대남이란 20대 남성을 의미한다. 사실 이대남에 대한 관심은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크지 않았다. 대부분 대학생 혹은 사회 초년생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병역의무를 수행하기에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돼 있기도 했고 오래 지속된 남성 중심 사회구조에서 그래도 불이익보다는 혜택을 많이 받는 집단이라는 통념도 존재했다. 게다가 선거 참여율도 낮은 집단이라 정치권의 큰 관심을 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사회적 화두로 등장하고,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의 비중이 높아지며 사회적 역할도 커짐에 따라 20대 남성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자신들이 실제로 겪는 사회적 경험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렇게 받는 혜택이 있지도 않은데 오히려 역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를 놓치지 않고 일부 정치인들은 이들의 불만을 자신의 정치자산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경향이 대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20대 남성에 대한 관심 자체는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관심을 선거운동 프레임으로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대녀에 대한 무관심이다. 최근 리서치뷰가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가운데 지지 후보가 없거나 모른다는 응답은 20대 남성에 비해 훨씬 높고 거대 양당 후보 이외의 후보를 선택한 비중도 높았다. 이대남에 대한 관심은 이대녀의 현 정치권에 대한 냉소적 시각과 맞물려 이대녀에 대한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대남이 불편함을 겪는 상황은 과거 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불거졌는데 반대로 이 상황에서 이대녀는 기존의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여전히 억압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이대남에 대한 관심은 이대녀가 여전히 경험하는 문화지체 현상을 한쪽으로 치워버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결국,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생각과 의견은 정치권이 어떻게 프레임을 짜느냐에 따라 반영되는 정도가 결정된다. 정치권이 관심을 가지는 집단의 목소리는 과다 대표되는 반면 이면에 숨겨진 다원성과 역사성은 경시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과정이 계속 진행되면 정치는 그들만의 선거가 돼 국민의 생각을 담아내는 용광로가 되기 어렵다. 특정 집단으로부터 표를 얻으려는 정당의 전략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결국 정치권은 세대·계층·성별을 초월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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