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놀 권리
[경향신문]
“하루를 잘 논 아이는 짜증을 모르고, 10년을 잘 논 아이는 마음이 건강하다. 음식을 고루 먹어야 건강하게 자라듯이 ‘놀이밥’도 꼬박꼬박 먹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편해문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중)
아이들에게 놀이는 삶 자체다. 놀지 못하면 병든다는 것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먼저 안다. 이렇게 중요한 아이들의 ‘놀 권리’는 아동협약에도 일찌감치 주요 권리로 규정되어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제정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는 ‘아동에게 놀이는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복지권’이라고 규정한다. 방정환 선생도 1923년 ‘어린이날 선언’을 발표하며 어른과 어린이를 동등한 주체로 대하고 어린이들이 뛰어놀 놀이터 등 여건을 마련해줄 것을 주문했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1988년)이나 어린이놀이헌장(2015)에도 이런 취지가 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놀이행동 전문가인 스튜어트 브라운은 놀이의 반대말은 ‘일’이 아니라 ‘우울’이라고 했다. 제대로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우울한 어른이 되고, 나아가 우울한 사회를 만든다.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자 대표가 자신의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놀던 외부 어린이들을 “남의 놀이터에서 놀면 도둑”이라며 주거 침입으로 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알려진 후 비난이 일자 다른 주민들이 대표의 해임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어쩌다 아이들이 옆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일까지 신고를 하게 됐는지 씁쓸하기만 하다.
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 뛰어놀던 골목과 공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젠 아파트 놀이터도 자기 아이들만 놀게 하자고 문을 걸어잠그고 있다. 가뜩이나 공부로 놀 시간과 놀 친구들을 빼앗긴 아이들이 한 줌 남은 놀이터에서도 내몰리고 있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의 놀이를 복원하고 또 놀 기운을 북돋아줘야 한다. 공동체 전체가 아이들에게 놀이터와 놀이 시간, 친구들을 돌려줘야 한다. 고급주택가든 서민들이 사는 동네든, 아파트든, 빌라든 아이들이 놀 공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아이들이 없어지는 사회에선 이런 논의 자체가 사치가 된다.
송현숙 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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