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발목잡힌 SW인재 육성

박정일 2021. 11. 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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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최근 모 기업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기업은 즉각 사과하고 조치를 했는데, 해킹이 아닌 하청업체의 실수라는 부연 설명도 붙였다. 물론 정확한 경위는 알 길이 없고, 해당 업체에서 발빠르게 대응해 지금까지 별다른 후속 피해는 없는 듯하다. 문제는 대기업 내에서도 충분히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음에도 일감 몰아주기 부담 때문에 일부러 외주를 준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2001년 당시 IT업체에서 기획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 당시 벤처 거품이 심했던 때였고, 프로그래머가 유망 직종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본 프로그래머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매일 밤을 새면서 기계적으로 소위 '노가다'만 반복하고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배너를 만드는 정도는 그냥 서비스였다. 초과수당도 없었다. 단순 반복 업무에 지쳐버린 선배들은 회사를 떠났다. 버틴 선배들은 회사가 망하면서 수개월치 월급도 못 받고 급기야 소송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여년이 지났고 정부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를 하면서 프로그래머들의 수난을 또 다시 목도하게 됐다. 정부가 대기업들의 공공 소프트웨어 입찰의 기회를 막아버렸고, 당시 대기업에서 공공사업 부문을 맡던 한 지인은 고민 끝에 독립을 결정했다. 그 지인은 당시 공공 데이터의 디지털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아마 대기업에 계속 있었다면 정부 수주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기대했던 그 사업은 또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당시와 크게 바뀌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IT강국이라 자처하지만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처음에는 인력과 시간 투자에 대한 박한 평가가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막았고, 지금은 지나친 규제의 덫이 소프트웨어 인재 육성의 길을 막고 있다. 2013년 공공 소프트웨어 분야의 대기업 참여 규제 이후 관련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전자정부 수출실적은 2015년 5억3404만 달러에서 2019년 3억99만 달러로 44%나 급감했다.

만약 해당 시장에서 중소기업의 활로를 찾아주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일단 성공한 듯하다. 2010년 공공 소프트웨어 조달 시장에서 76.4%에 이르던 대기업 점유율이 급감하고, 2018년 중소기업 비중이 92.6%로 그 자리를 대체했다. 이로 인해 소프트웨어 인재들의 몸값도 낮아졌다. 업계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개발자 신입 초봉이 주요 대기업의 경우 4000만원대 중·후반에 이르는 데 비해 중소기업은 여전히 3000만원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에 발간한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참여제한 규제가 대졸 이상 정보통신산업 종사자 대비 소프트웨어 종사자의 임금을 약 13.9% 하락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제는 규제를 풀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와야 하지 않나 싶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이제는 단순한 방식의 중소기업 보호 보다는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의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디지털 전환이 최대 경영 화두로 떠오르면서 국적을 가리지 않고 관련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문제는 워낙 대기업들의 눈높이가 높다 보니 국내에서는 딱히 원하는 수준의 인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2018년부터 청년SW아카데미(SSAFY)를 시작하는 등 주요 대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인재들이 갈 곳이 많지 않고, 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는 여전히 먼 얘기다.

대신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 계열사를 일감몰아주기나 지배구조 강화용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감시를 철저히 하면 된다. 공공 소프트웨어 수주 역시 절차와 과정만 투명하게 한다면 대기업 특혜 의혹을 피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서 국가 간 무한경쟁 시대로 넘어가자 기업들은 이에 적응하기 위해 혁신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기업 발을 언제까지 묶어놓을 건가. 이런 상황에 여전히 분배에만 집착하다 보면, '파이'가 아니라 '콩 한쪽'을 나눠먹는 안타까운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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