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라면 지금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부터 했을 겁니다"

김지윤 2021. 11. 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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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ㅣ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이슈 리포트 펴낸 정현선 교수
7년 만에 바뀌는 개정 교육과정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소홀 지적
철학 부재한 기술 편향적 인공지능 교육
위험하고 실효성도 없어..
비판적으로 맥락 파악하는 능력 중요
지능정보사회의 핵심 의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민성 교육'이어야
지난 10일 오후 정현선 교수(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장)가 인터뷰를 마친 뒤 연구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정 교수는 지난달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 방안’이라는 이슈 리포트를 펴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없이 온라인 교육을 시행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행위입니다.”

2020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헨리 젱킨스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헨리 젱킨스 교수는 <컨버전스 컬처> 등의 저서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미디어 분야의 석학이다.

보호자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아이가 유튜브를 너무 많이 봐요”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온통 아이 주변엔 소셜 미디어뿐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이 생소할 뿐이지 이미 부모들은 우리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가 ‘바로 이 교육’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뉴스의 한 장면을 보며 ‘1인 미디어 알아보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뒷전’?

2022년 교육부가 7년 만에 교육과정을 개정한다.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공교육의 뼈대를 이루는 내용이다.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떠올리면 그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난 10월22일 오후에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총론 주요 사항 공청회’가 유튜브에서 생중계되기도 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 교육부가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 계획을 발표했는데 ‘인공지능(AI) 교육’ 등을 앞세우면서 ‘언어와 매체’ 과목은 없어졌다. 교육부가 그간 미디어 교육의 공교육화를 강조해왔는데 막상 개정 교육과정 내용에서는 ‘뒷전’으로 미룬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 내용의 편향 등 전반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숨은 이해관계와 의도를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교육을 말한다. 사실을 말하는 미디어에도 편향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교육이다. 그 편향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그것이 갖는 함의와 맥락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비판적 탐구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민주시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인 이유다.

지난 10일 경인교육대학교 인천캠퍼스 연구실에서 정현선 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장(국어교육과 교수)을 만났다. 자신의 누리집(hs-jeong.net)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프로젝트와 각종 자료를 공유하고 있는 정 소장은 “교육과정 총론은 교육과정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를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라며 “미디어에 대한 근본적 이해,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주지 않고 기술적으로만 사용하게 한다면 무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정 소장과의 일문일답.

경인교대 ‘디지털 매체와 의사소통’ 수업 프로젝트의 결과물. 정현선 교수 제공

지난달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 방안’이라는 이슈 리포트를 펴냈다. 학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한 ‘큰 그림’이 담긴 내용인데.

“이슈 리포트에서는 세가지를 강조했다. 미래교육의 비전으로서 ‘미디어 교육 강화’ 명시, 핵심 역량으로 ‘미디어 역량’ 추가, (현행 교육과정의 핵심 역량이 유지될 경우) 의사소통 역량 및 지식정보처리 역량에 미디어 리터러시를 하위 요소로 포함해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것 등이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위험과 기회에 시민적 태도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디지털 시민성’이라는 언급도 추가하도록 제안했다.”

인공지능 교육, 디지털 소양 등에 있어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인데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 이슈 리포트에서 구체적으로 제언한 내용이 궁금하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 정규 수업 시간에 안정적인 시수가 확보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초·중·고 학교급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목표를 제시했고 초등의 경우 특화 단원 개설, 중학은 독립 프로그램 운영, 고등은 독립 선택과목 개설 등에 관해 언급했다.

무엇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는 교육과정 개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 개발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관련 전문성이 있는 연구자 및 초·중등 교사들이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지속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정책 추진을 위한 기본 계획을 마련해 현직 교사와 예비 교사들에 대한 교육 방안도 세워야 한다고 본다. 교대와 사대의 양성 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필수 과목 도입 및 주요 내용 요건을 제시했다. 중앙교육연수원 등을 통한 현직 교사의 온·오프라인 직무 연수 도입도 중요한 과제다.”

경인교대 ‘디지털 매체와 의사소통’ 수업 중 알고리즘 만들기 프로젝트의 결과물. 정현선 교수 제공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학습이 확대되면서 원격교육을 포함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됐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고 다루는 능력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 기기로부터 얻은 지식과 정보를 아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고 처리할 것인지가 진정한 ‘디지털 시민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어린이·청소년이 디지털 격차로 인한 차별 없이 디지털 환경의 기회와 위험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올해 3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오프라인 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환경에서 어린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어린이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일반논평 제25호: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권리>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1991년에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발표한 협정 당사국으로서 적절한 입법·정책·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들이 인터넷과 미디어 등에서 얻은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맥락을 비판적으로 분석·평가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국제사회에서도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사이버 폭력, 디지털 성범죄, 온라인에서 접하는 혐오 표현 등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에만 방점을 찍은 디지털 교육만으로는 해결이 힘들다고 본다.

“요즘 십대들은 사이버 폭력, 디지털 성범죄뿐 아니라 온라인 도박에도 노출돼 있다. 디지털 ‘기술 역량’ 향상에만 초점을 둔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민주시민 교육’의 영역으로, 미디어 문화 및 윤리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디지털 시민성 교육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미디어 이용에서의 자기조절 능력, 윤리적 이용, 창의적 제작 능력 등을 키워줄 수 있는 학교 교육의 책무, 어른들의 책임이 요구되는 때다. 기존의 정보통신윤리 교육에서 미디어 이용 조절, 개인정보 및 저작권 보호 등 개인의 윤리를 다루었다면, 현재 디지털 시민성은 미디어 환경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책임 있는 자세, 사회 참여 등 미래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해외에서는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

“핀란드, 캐나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이 분야에서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을 보자. 핀란드는 2016년에 전면적으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멀티 리터러시’ 등을 중요한 역량으로 포함했다. 멀티 리터러시는 다양한 텍스트 환경 속에서 말하기와 듣기에 관련된 텍스트와 복합양식 텍스트를 해석하고 만들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전통적인 학습 환경과 디지털 환경에서 기술과 미디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연습할 기회를 제공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교육에서도 기술적 습득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접하는 정보나 서비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기술을 수용하고 공급하는 당사자 사이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미디어 교육 법안이나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고, 지난 7월에는 미디어교육 활성화 법안이 발의됐는데.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시민성 관련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 교육과정 총론에 미디어 리터러시 부재, 교과 교육과정 내 관련 내용이 중복되거나 누락되는 등 내용 면에서 위계성과 체계성이 부족하다고 본다. 교육과정 및 교과서에 미디어에 관한 지식과 현재 학생들의 미디어 문화, 디지털 환경 대응 방안 등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정 교수는 “지능정보사회의 핵심 의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민성 교육’이 돼야 한다. 이러한 인식론과 철학이 부재한 기술 편향적 인공지능 교육은 위험하고 실효성도 없다”고 강조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면?

“‘미디어 교육’ 또는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역량)를 명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초연결성, 가상 물리 시스템, 빅데이터 등이 만들어내는 지능정보사회의 핵심 의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민성 교육’이 돼야 한다. 이러한 인식론과 철학이 부재한 기술 편향적 인공지능 교육은 위험하고 실효성도 없다.

자신의 맥락, 정체성, 사회를 연결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해 연령에 적합하게 우리 아이들이 차근차근 배워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본다. 요즘 중학생들 장래 희망이 ‘아무 것도 안 하는 부잣집 고양이’나 ‘돌멩이’라고 한다. 우리 시대의 슬픈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어른들의 이전투구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만든다면 우리 교육은 희망이 없다.

미래 세대인 어린이·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이제 ‘생존 역량’이다. 근대에는 문자를 습득하는 능력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소양이었다면, 이제는 미디어 환경을 전방위적으로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며 비언어적 요소를 ‘캐치’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졌다.

미디어는 이제 지식과 정보를 매개하는 중요한 도구가 됐다. 한글 창제, 보급을 통해 ‘지식권력’을 대중에게 돌려준 세종대왕이 디지털·미디어 시대인 21세기에 계셨다면 과연 어떤 정책부터 만드셨을까를 신중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 역량’이 달린 일이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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