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방법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초기 인터넷 브라우저 넷스케이프를 개발한 마크 앤드리슨이 “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나”라는 제목의 글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지 10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그의 예언대로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세계 시총 순위 최상위 5대 기업 중 아람코를 제외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 아마존을 보면 모두 순수 소프트웨어 기업이거나 소프트웨어가 기업가치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능력을 가진 코더가 특급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발자라면 억대 연봉을 준다고 해도 사람을 구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어린 나이부터 코딩 교육을 시키는 게 유행이 됐다. 한 달 수강비가 30만 원대에 교구 가격은 100만 원을 넘는 고가의 코딩 사설학원이 특수를 맡고 있다고 한다.
GPT-3가 뉴스 기사나 칼럼을 쓰고, 코덱스가 코딩을 하고, 인공지능이 X-레이 사진을 읽고 폐암을 진단해 내는 세상에서 자녀를 어떻게 준비시켜야 아이들이 컸을 때 직업 걱정을 안 하게 될지를 고민하는 부모가 많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훨씬 발달해 있을 20년, 30년 후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할까.
1997년 IBM이 개발한 체스 인공지능 딥 블루에게 패한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꺾은 것처럼 딥 블루가 체스에서 카스파로프를 꺾은 건 체스 역사에 남을 중요한 사건이었다. 인공지능에 패한 최초의 체스 세계 챔피언이란 오명을 갖게 된 카스파로프는 체스를 그만두고 실직자가 되었을까. 놀랍게도 카스파로프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였다. 카스파로프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팀을 이뤄 체스를 두는 센타우르 체스를 개발해낸 것이다.
센타우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말의 모습을 한 상상의 종족이다. 몸을 이루는 말의 힘을 다스리는 정신이 상반신을 이루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카스파로프가 인공지능과 팀을 이뤄 두는 체스 게임을 센타우르라 부른 것도 인공지능의 계산을 다스리는 건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란 의미일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인간과 인공지능 연합팀이 인공지능 세계 챔피언과 체스를 두면 연합팀이 이긴다는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발달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인간과의 팀워크가 오히려 방해가 되고 연합팀이 인공지능에게 패하는 날이 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것과 병행해서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인간의 능력도 향상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연합팀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온갖 분야에서 인간의 전문성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될 미래를 준비하려면 인공지능과 전문성 경쟁을 벌이려 하지 말고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인공지능 앱과 인공지능을 탑재한 하드웨어가 개발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인공지능을 사용하면서 인공지능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게 단순한 코딩 조기교육보다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e뉴스팀 (bod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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