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개혁, 반(反) 경쟁, 무(無)서열화가 원칙

2021. 11. 1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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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학생의 교육권 보장을 중심에 둔 교육을 위해

[이은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11월, 수능 철이 다시 돌아왔다. 수시 전형은 이미 일정이 진행 중이고, 수능 시험 이후 정시도 시작될 것이다. 2000년대부터 대학 입시 방식은 끊임없이 논쟁거리였다. 어떤 때는 고교 자체 시험 성적(내신) 비중을 늘렸다가, 논술·면접 등 대학별 평가 비중을 늘렸다가, 학교생활기록부 종합 전형 또는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전형을 늘렸다가 하며, 대입의 방식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이리저리 바뀌어왔고 전형의 가짓수도 늘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수능의 절대평가화 및 자격고사화 추진, 국공립대 공동 학위제 등을 통한 대학평준화 추진을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이후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까지도 이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론조사 등의 절차를 통해, 복잡해진 대입 전형에 대한 대중적 피로감과 시험/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에 기반한 수능 비중을 늘리자는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상류층 특목고 학생의 스펙 부풀리기 문제가 불거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수능 시험 비중을 확대하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입시 정책은 귀결되었다.

이렇게 대입 방식이 여러 차례 바뀌어왔지만 수능을 비롯해 대학 입시 시즌의 모습은 언제나 비슷한 것 같다. 어떤 방법을 도입해도, 개인이 어떤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지원해도, 그 모든 과정은 '경쟁을 통한 선발'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경쟁의 룰만 바뀔 뿐,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학생들을 평가 결과에 따라 어떻게 줄을 세울지 그 방법이 달라졌을 뿐, 학생들을 줄 세우고 그 결과에 따라 차별한다는 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경쟁은 입시 철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공교육에서 지내는 기간 대부분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다.

학생이 아닌 학교 측의 평가·선발권을 우선하는 입시

공교육 시스템은 사회에서 보장하는 교육을 권리로서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어린이·청소년기부터의 교육을 사회가 책임지고 일정 정도의 교육의 기회와 질을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학교는 이를 위해 사회에서 노력과 자원을 들여 만들어낸 것이다. 이 교육이 목표로 하는 바는 학생이 여러 경험, 정보, 지식, 견해를 습득하고 확립하는 것, 이를 타인과 함께 소통/교류하며 이뤄내는 과정의 경험 등 사람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것일 터이다. 대학교육 역시 공교육 시스템의 일부로서 이러한 원리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 교육은 학생의 교육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역할보다는 경쟁의 과정이자 그 결과로 학생들을 서열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입시를 대비하는 고등학교 교육은, 시험을 치기 위해 일정 범위 내의 지식을 제공하고 지필 평가 혹은 수행 평가, 그 밖의 잡다한 '증명 가능한 활동들'로 학생들을 순서대로 줄 세운 다음, 그 정보를 대학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 성적 경쟁과 직접 연관이 없는 여러 교육과정이나, 학생들의 삶과 경험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는 말은 학생들의 인권과 다양성을 침해하는 규제와 통제의 단골 변명거리이다. 많은 학교가 공식/비공식적으로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특혜를 제공하고, 성적이 나쁜 학생은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다. 학생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에 대한 권리보다, 대학이 학생들을 입맛대로 선발할 권리가 우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 입시는 형식상으로는 학생들이 대학교를 선택하여 지원하는 모양새이지만, 실제로 학생들의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선택지란 학생의 흥미나 적성이 아니라 내신과 수능 성적 혹은 여타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스펙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학 서열을 가늠하여, 자신이 선발당할 수 있을 만한 대학에 지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실현되는 것은 학생의 선택권이 아니라 대학의 학생 선발권, 그리고 그에 따른 서열 체제라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자연히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유예하고 경쟁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더 좋은(정확히는 사회의 고정관념에 따라 좋다고 인정받는) 학벌이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현실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를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경쟁에서 이겨야 선택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억압적이고 경쟁적인 교육 속에서 "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라며 평가 권력을 휘두르는 교사의 성희롱이 가능해진다. 자기 삶의 대부분을 걸었던 경쟁에서 실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생겨난다.

반 경쟁, 무 서열화가 원칙이 되어야

경쟁이라는 요소 때문에 학생들이 교육권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면, 당연히 경쟁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육을 바꿔내야 한다. 어떤 경쟁이 더 공정하고, 덜 고통스러울지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논의한들, 결국 누가 더 우월한지를 가리고 그 결과로 차별하기 위한 교육이라면, 심지어 그 교육이 학생의 권리를 침해하고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누군가의 배울 권리를 온전히 보장한다고 할 수 없다.

사실 아주 예전부터 꾸준히 경쟁 위주의 교육이 가지는 문제를 짚어내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이어졌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한국 교육이 경쟁적이고, 학업 스트레스가 높으며, 이로 인해 청소년들이 고통받는다는 것을 우려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아말 알도세리(Amal Salman Aldoseri) 위원은 2019년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에 관한 한국 대상 심의에서 "대한민국 공교육의 목표가 오직 명문대 입학과 경쟁뿐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아동권리협약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라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이 한국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대학 입시에 의한 경쟁이라는 것은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경쟁이 없는 교육은 허황된 소리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입학 과정에서 경쟁 없이 모든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려 하는 제도를 이미 갖고 있다. 대학의 경우만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대학 입학과 학교 교육과정 전반에서 경쟁적 요소를 제거하는 시도를 해왔고, 문제없이 유지되는 중이다. 이 때문에 사회가 혼란에 빠지거나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경쟁을 전제로 한 교육과 입시 제도 안에서 사소한 변주들을 해가며 충분히 많은 시도들을 했다. 이제는 경쟁이라는 전제를 완전히 벗어난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공교육 시스템의 목표는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교육권이 제대로 보장되려면, 교육에서 경쟁의 요소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 평가는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성찰하고, 학생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 참고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이뤄져야 한다. 획일적 기준으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고 줄 세워서 순서대로 더 안정적인 미래라는 보상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이 나아가고 싶은 길을 찾는 것을 돕고, 원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인권단체들은 현재의 이러한 경쟁적 교육에 문제제기하고 새로운 교육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입시경쟁 반대 청소년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bit.ly/입시경쟁반대2021) 학생, 청소년, 더 나아가서 시민들이 경쟁 없는 교육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고 진지하게 상상해야 할 때이다.

[이은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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