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까마귀를 잡아먹는 물고기 '오징어'

엄민용 기자 2021. 11.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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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한류열풍을 일으키며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를 두고 ‘이웃사촌’ 일본은 무척 배가 아픈지 ‘오징어 게임’ 원조 타령을 늘어놓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소재가 된 ‘오징어 놀이’의 뿌리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놀이의 우리식 이름은 ‘오징어 달구지’ ‘오징어 가이상’ ‘오징어 가생’ 등 다양하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가이상’으로, 이는 ‘가이센’이 변한 말이다. 일본말 가이센은 ‘회전(會戰)’, 즉 대규모의 병력이 격돌하는 것을 뜻한다. 일본에서 우리의 ‘오징어 놀이’와 같은 것을 즐긴 기록도 실재한다.

하지만 ‘오징어 가이센’이든, ‘오징어 달구지’이든 이 소재를 세계의 콘텐츠로 만든 것은 한국의 감수성이고, 한국의 문화기술이다. 일본 게이샤를 소재로 한 <나비부인>이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아니라 이탈리아 오페라이듯이 <오징어 게임> 역시 한국의 걸작 드라마일 뿐이다.

<오징어 게임> 덕에 올해 최고의 화제어가 된 오징어는 귀엽고 여린 듯한 모습과 달리 실제로는 무서운 물고기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등 옛 문헌에는 오징어가 한자말 ‘오적어(烏賊魚)’로 적혀 있다. 까마귀 오, 도둑 적, 고기 어, 즉 ‘까마귀 도둑’이다. “오징어는 물 위에 죽은 듯이 떠 있다가 까마귀가 주워 먹으려 다가오면 재빨리 다리로 감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는 설명까지 실려 있다. 간혹 독수리나 갈매기가 문어나 오징어에게 잡아먹혔다는 얘기가 해외 뉴스로 전해지곤 하는데, 우리 바다에서도 오래전부터 까마귀가 희생돼온 것이다. 다른 설도 있다. 오징어의 검은 먹물을 까마귀에 빗대 ‘오즉어’로 썼는데, 후세에 음이 비슷한 ‘오적어’가 됐고, 오늘날 오징어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오징어의 특징 중 하나는 먹물이다. 하지만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빈 종이만 남는다. 사기꾼이 이용하기에 딱 좋다. 이에 실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믿지 못할 약속이나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오적어 묵계(烏賊魚 墨契)’라고 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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