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좀 다른 질문

한겨레 2021. 11. 1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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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들은 대표적인 충고 중 하나가 지역 사람들의 역린, 즉 지방에 살고 있다는 박탈감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만일 국가 경제정책의 목표가 '탈성장'이라면? 그때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자원과 일자리가 같을까? 그때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과학 기술이 지금과 같을까? 어쩌면 수도권엔 없고 지방에만 있는 것들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지지는 않을까? 미세먼지 없는 하늘과 사방의 숲, 너른 들과 인적 드문 마을, 그리고 폐가가 되어가는 빈집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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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명인(命人)ㅣ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고흥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들은 대표적인 충고 중 하나가 지역 사람들의 역린, 즉 지방에 살고 있다는 박탈감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떠난다. 수도권이 아니면 광주나 순천으로라도, 그도 아니면 시골 마을에서 읍내로라도.

마을 할머니들은 고향을 떠난 당신 자식과 연배가 비슷한 우리에게 인정을 베푸시지만, 시골에 흘러들어온(?) 우리를 낙오자로 보는 시선이 역력하다. 아직 남은 사람들은 자식이라도 어떻게든 내보내려고, 고흥 읍내는 도시를 닮으려고 기를 쓴다.

2019년을 기점으로 수도권의 인구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절반을 넘어섰고, 지역 내 총생산의 수도권 비중도 52.1%라고 하니 이 사실만으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자명하다.

‘서울이 한국의 표준이에요’, ‘지방에 뭐가 없다기보다 서울에 모든 게 다 있죠’, ‘고향에서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요’, ‘인생을 100m 달리기에 빗대면 지방선 25m 뒤에서 출발하는 격’. 얼마 전 신문에서 본 말들이다.

절절히 공감하면서도 문득 떠오르는 삐딱한 생각. 저마다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데 표준이란 뭘까? 사람이 성장한다는 건 뭘까? 왜 상투적으로 인생은 경쟁하는 달리기에 빗대질까?

그리고 이어서, 전라남도 면 단위의 한 중학교에서 ‘노동인권 인문학’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이 퍼붓던 질문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10주 동안 ‘행복의 조건, 생각의 좌표, 가치관 여행, 노동의 가치, 소비자로 보는 세상·노동으로 보는 세상, 살림의 노동·죽임의 노동, 학생인권·노동인권, 인권의 교차성, 공정성과 인권, 권리와 존엄 사이, 내 인생의 나침반’ 등의 열쇳말로 참여활동을 설계하여 진행한 수업에서 학생들은 열렬한 토론 끝에 매번 질문을 쏟아냈다.

“사람은 다 다른데 왜 우린 똑같은 시험을 봐요?”, “저는 심리학과에 가고 싶은데 왜, 남의 얘기를 얼마나 잘 들어주는 사람인지는 안 중요하고 시험만 잘 봐야 돼요?”, “사람은 먹어야만 살 수 있는데 왜 농사를 지으면 가난해져요?”, “샘이 어릴 땐 없었다는 비정규직은 대체 왜 생긴 거예요?”, “따져보니 일의 강도, 위험성, 책임성, 사회적 기여도, 다 이렇게 높은데 왜 청소나 버스 운전 같은 일엔 임금을 적게 줘요?”, “자연을 살리는 일과 자연을 죽이는 일은 노동의 가치를 완전히 다르게 매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전기를 제일 많이 쓰는 건 서울인데 왜 발전소는 지방에만 지어요?”, “키가 다른 사람이 담장 안의 야구 경기를 보게 하려면 담장을 없애면 되는데 왜 키 작은 사람이 사다리에 올라서야 돼요?”

열네살에 이런 질문을 하던 학생들은 몇살이 되면 이 모든 질문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게 될까? 한 반에 스물댓명의 학생 중 계속 여기서 살고 싶다던 80%의 학생은 25m 뒤에서 출발하는 박탈감을 안은 채 결국, 표준과 성장 가능성을 찾아서 도시로 떠나게 될까?

20년 후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상상해서 그려보자고 했을 때 나왔던 질문은 지금도 서늘하다. “샘, 20년 후에도 지구와 우리가 있긴 할까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해소,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만일 국가 경제정책의 목표가 ‘탈성장’이라면? 그때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자원과 일자리가 같을까? 그때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과학 기술이 지금과 같을까? 어쩌면 수도권엔 없고 지방에만 있는 것들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지지는 않을까? 미세먼지 없는 하늘과 사방의 숲, 너른 들과 인적 드문 마을, 그리고 폐가가 되어가는 빈집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런 것들은 왜, 기회가 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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