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차트 밖에서

서정민 2021. 11. 1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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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게티이미지뱅크

서정민ㅣ문화팀장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가수는 자기 노래 제목대로 된다는 속설이 있다지만, 그 이름이 거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지난해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으로 벼락 스타가 된 가수 영탁 얘기다. 이달 초 영탁의 소속사 대표가 음원 스트리밍 수를 조작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그는 영탁의 2018년 발표곡 ‘니가 왜 거기서 나와’의 음원 차트 순위를 올리고자 마케팅 업자에게 음원 사재기를 의뢰했음을 인정했다.

공식적으로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의혹은 늘 끊이지 않았다. 몇년 전, 생소한 노래가 갑자기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는 일이 잦아지면서 가요계에 전방위적으로 음원 사재기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면서 음원 차트 자체의 문제점 또한 도마에 올랐다.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상위권에 들기만 하면 큰 이득을 얻는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면 이른바 ‘트랙’에 올라타게 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차트 ‘톱 100’ 전체 듣기 버튼을 습관적으로 누르기 때문이다. 카페, 술집 등에서도 ‘톱 100’을 반복적으로 돌리기 일쑤다. 이런 식으로 반복 재생되면서 순위는 더욱 공고해진다. 음원 수익이 폭발적으로 늘 뿐 아니라, 높아진 인지도만큼 행사 출연료도 치솟는다. 그러니 어찌 음원 사재기 유혹에 안 흔들리겠는가.

한편으론 차트 전성시대에 따른 획일화와 몰개성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떠올랐다. 취향은 제각각인 법인데, 자기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 듣기보다 남들이 많이 듣는 음악을 쫓아 듣는 게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우리도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글로벌 플랫폼처럼 차트를 없애고 취향 기반의 맞춤형 플레이리스트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결국 국내 음원 플랫폼들도 차트 폐지까진 아니어도 차트 집중도를 낮추고 집계 방식을 바꾸는 등 변화를 꾀했다. 그 결과 요즘은 음원 사재기 의혹이 쏙 들어갔다.

그래도 차트의 힘은 여전히 세다. 방탄소년단(BTS)은 미국 음악 차트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고 나서야 누구도 함부로 얕볼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처음 공개 당시만 해도 호불호가 갈리는 가운데 비판적인 의견도 꽤 나왔지만, 전세계 1위(플릭스패트롤 넷플릭스 티브이 쇼 부문 기준)에 오른 뒤로는 호평 일변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차트가 부여하는 권위의 효과다.

차트의 힘은 다수의 선택을 받았다는 데서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다는 사실은 내가 선택할 경우 실패 확률을 줄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천만 영화라 해서 모두가 인정하는 걸작은 아니며, 2018년 방송된 <나의 아저씨>(tvN)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뒤늦게 또는 다시 보며 <오징어 게임>보다 더 큰 재미와 감동을 느꼈다는 이들도 내 주변엔 많다.

며칠 전 서울 연남동의 ‘현대음률’이란 엘피 바에 갔다. 간판도 없고, 신청곡을 안 받아 오로지 디제이가 틀어주는 곡만 들어야 하는 곳이다. 수십년 전 옛 가요의 숨은 명곡들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던 중 문득 귀가 번쩍 뜨였다. 클래식 피아노 연주가 나오는가 싶더니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처럼 주절거리는 창법의 노래가 흘렀다. 나중에는 비장미 넘치는 교향곡처럼 확장됐다. 충격적으로 좋았다. 음악깨나 듣는다는 일행 중 아무도 이 노래를 몰랐다. 디제이에게 물어보니 장근후의 1989년 발표곡 ‘사랑하는 모짜르트’라 했다. 음원 사이트엔 없고, 유튜브에 딱 하나 있는 영상의 조회수는 300회가 채 안 됐다.

인기곡만 쫓았다면 이 노래는 평생 못 만났을지도 모른다. 짜릿한 발견은 차트 밖에 있는 법이다. 선우정아와 바버렛츠는 ‘차트 밖에서’란 곡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차트 밖 친구들아/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야/ 건강하게 오래오래 음악합시다”. 가수만이 아니다. 우리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즐거우려면 차트 밖 나만의 취향을 찾을 일이다.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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