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의 강화일기] 어쩌다 협동농장

한겨레 2021. 11. 1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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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ㅣ그래픽노블 작가

스위스 제네바 도서전에서 돌아온 지 이틀 되었다. 내가 돌아오자 동네 책방 ‘국자와 주걱’ 현숙 언니는 제주도 송당리 서실리 책방으로 떠났다. 강화도에서 제주도로 제주도에서 강화도로 책방끼리 11월을 교환했단다. 언니는 내게 제주도 오고 싶으면 오라고 했다. 가고 싶지만 아마도 어려울 것 같다. 국외, 국내 작가와의 대담과 강연 일정이 11월에 많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자주 보지도 못했으면서 괜히 온 마을이 텅 빈 것처럼 썰렁했다. 작업실 창을 통해 내다보는 가을도 우수수 떨어졌다. 큰나무 카페 앞 군고구마 통에서 연기가 핀다. 가만 보니 상일이 아빠다. 머리에 일회용 비닐 두건을 두르고 고구마를 굽고 있다. 나는 잠시 걸을 겸 집을 나섰다. 상일이 아빠가 고구마 먹으라고 잘 익은 거 하나를 내민다. 손에 든 고구마가 따스하다. 어렸을 때 코흘리개 친구들과 학교 앞에서 먹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추억의 한입을 혀로 음미한다. 달다. 상일이 아빠는 내게 일요일 오후에 무얼 하느냐 묻는다. 함께 협동 농장에 가보지 않겠느냐 한다. 나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한 20회가량 모였는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거란다. 나는 가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일요일 오후 4시, 큰나무 카페 앞에 갔다. 나무, 기린 선생과 윤수, 윤수 엄마, 동준이 엄마와 아빠, 상일이 아빠, 나 이렇게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 상일이 아빠에게 물었다. 볼 때마다 비닐로 된 머리 두건을 쓰고 계신데 이유가 뭐냐고? 머리를 안 감아서거나 감기에 걸릴까 봐 중 하나인데 본인은 오늘 머리를 안 감아서란다. 근데 내가 볼 때마다 비닐 두건을 썼으니 매일 안 감은 걸까? 차마 그 말은 못 물어보았다. 양도면 면사무소 우체국 방향으로 가던 차는 조산리 어느 밭에서 멈췄다.

올해 4월부터 시작했단다. 장애가 있는 청년들과 가족들, 도시에서 농촌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지역 농민과 함께 모여서 농사를 지어보자는 의도로 시작했다고 나무 선생이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이름이 협동 농장이다. 원래 살던 지역 농민에게 농사를 배우며 함께 농작물을 키우며 서로 자연스럽게 정착하고 융화되자는 의도란다. 도감뿌리의 안재원 회장이 함께 하고 있단다. 마음을 나누고 실제로 농사 기술도 익히고, 수익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옛말은 놀랍다. 바로 안재원 회장이 도착한 것이다.

올해의 첫 시도인 순무는 완전 친환경으로 하고 싶었으나 병충해 정도가 심해졌다. 한 주나 두 주 만에 한번씩 모여서 농사를 짓다 보니 벌레를 바로 바로 잡을 수가 없었다. 고추도 심었는데 심은 시기가 조금 늦었다. 결국 벌레 잡는 약을 한번 주었다. 고구마를 다 캤는데도 남은 이삭이 꽤 있었다. 그 모양이 큰 마늘을 닮았다. 비가 오다 안 오다를 계속해서 고구마가 쩌억쩍 갈라졌다고 기린 선생이 말했다. 고구마를 줍기 시작했다. 삶아서 닭에게 준다고 한다. 늦게 온 영주 엄마와 영주가 따스한 오미자차와 레몬차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영주 엄마는 이런 고구마가 더 맛있다고 했다. 쪄서 말려서 먹으면 제대로란다.

순무는 아직 어렸다. 하늘하늘한 것이 귀여웠다. 잎은 벌레가 많이 먹어서 구멍이 숭숭 뚫렸다. 영하 3도까지는 괜찮다. 더 아삭아삭해진다. 그러니 지금 더 솎아줘야 한다. 된장국 끓여서 꼭 어금니에 넣고 씹으라고 안 회장이 말했다. 그래야 골고루 씹힌단다. 나무 선생은 솎아 낸 순무를 닭에게 줄 생각이란다. 영주 엄마가 그것을 영주 할머니에게 주라고 한다. 맛있는 무언가가 탄생이 될 거란다. 할머니 음식 솜씨가 좋은가 보다. 굉장히 궁금해진다.

“뜨거울 때 오미자차 한잔 드세요”라고 기린 선생이 말한다. 그때 안 회장이 “나는 오미자보다 사미자를 좋아하는데”라고 한다. 빵 터졌다.

올겨울에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해 안 회장에게 물었다. 땅이 얼기 전인 11월 말에 거름을 줘야 땅이 부드러워진다. 땅의 수평과 위 아래를 만들고 물이 빠질 수 있는 통로도 만들어주어야 한다. 정미소에서 왕겨를 얻어 뿌려놓으면 얼지 않는다. 안 회장이 진지하게 설명하는데 협동 농장 대표 청년, 영주가 손가락을 들었다. 출석률 90%가 넘는 그는 개근상 받으려고 오늘 산에서 뛰어 내려왔단다. “질문 있어요. 신문지 있어요?” 종이를 좋아하는 영주의 질문에 또 한번 모두 빵 터지고 말았다. 웃는 사람들의 뒤로 붉은 해가 지고 있다.

나는 하얀 무를 세개나 얻어 왔다. 하나는 그냥 깎아 먹고 두개는 엄마에게 된장국 끓여 먹으라고 가져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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