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조롱거리가 된 'K-시리즈'

김범수 2021. 11. 1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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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주인이 없다.

오늘날 유행어 중 'K-시리즈'가 꼽힌다.

K-시리즈는 지난해 코로나19 1차 대유행 당시 'K-방역'을 시작으로 정부의 의지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단맛을 본 정부는 'K-의료', 'K-무비' 등으로 응용해 밀었고, 언론도 K-시리즈 표현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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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주인이 없다. 누구나 자유롭게 언어를 사용하고, 특정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유행어가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생물과 같다. 또한 천년을 가는 문장도 있지만, 빠르게 식어버리는 언어도 있다.

오늘날 유행어 중 ‘K-시리즈’가 꼽힌다. K-시리즈는 지난해 코로나19 1차 대유행 당시 ‘K-방역’을 시작으로 정부의 의지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K-방역이라는 유행어는 성공으로 해석됐다. 단맛을 본 정부는 ‘K-의료’, ‘K-무비’ 등으로 응용해 밀었고, 언론도 K-시리즈 표현에 동참했다.
김범수 외교안보부 기자
그럼에도 언어에 ‘국뽕’이 묻으면 쉽게 지루해지고 피로감이 커진다. 국뽕이란, ‘국가’와 마약을 뜻하는 ‘뽕’의 합성어로 약에 취하듯 왜곡된 애국심에 도취되거나,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맹목적으로 커지는 행태를 말한다. 사소한 것도 크게 포장돼 국가주의를 강요받는 데 오는 피로감이 따른다.

수용자와 달리 위정자는 K-시리즈 같은 국뽕 유혹에 빠진다. 국뽕은 국민들의 사기를 쉽게 끌어올리고, 자국민이 우월하다는 과도한 애국심을 부여한다. 위정자의 입장에선 편리한 통치 수단이다. 광신적인 국뽕을 경계했던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애국주의는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물론 K-시리즈는 과거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한국 소프트파워에 독자성을 부여할 수 있다. 동시에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한국 문화를 국수주의에 머무르게 하는 역효과도 존재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보자. 오징어 게임에서 나온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등 한국적인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통했지만, 전 세계 시청자가 열광한 것은 작품의 우수성 때문이지 한국적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K-드라마 덕분이라고 강조할 필요도 없다. 소프트파워에 자신있는 미국, 영국 같은 문화선진국은 정부가 나서서 자국 문화에 굳이 ‘A(merican)’, ‘B(ritish)’ 같은 알파벳을 붙이지 않는다.

위정자가 이탈리아까지 가서 ‘K-푸드’ ‘K-게임’이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이용자가 콘텐츠에 매료되면 결국 통하게 된다. 세계적인 인터넷전화 ‘스카이프’(에스토니아), 게임제작사 ‘워게이밍넷’(벨라루스)의 경우에도 콘텐츠가 훌륭해서 사랑을 받는 것이지 태동 국가를 본 게 아니다. 구태여 ‘K-강조’를 해봤자 거부감만 커질 뿐이다. 가령 이탈리아 사람이 한국에 와서 피자나 파스타를 보고 말 끝마다 ‘I-푸드’라고 한다면 어떨까.

변질된 K-시리즈는 과거 선진국 사람들에게 한국 콘텐츠를 알고 있냐고 끊임없이 확인하고 잠깐의 만족감을 느꼈던 “두 유 노(Do you know)?”의 현대판이다. 내적 성장 없이 유행에 기댄 국뽕은 지속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한 차례의 성공으로 정부가 억지 ‘밈(meme, 유행어)’을 밀고 나가는 것에 대해 북한은 “마치 국제사회 표본이나 된 듯 꾸며대는 남조선식 잡탕어”이자 “미꾸라지국 먹고 용트림 하는 격”이라고 조롱했다. 북한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그 조롱이 조롱만으로 들리진 않는다.

김범수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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