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虛榮이라는 이름의 나라 病’

강천석 논설고문 2021. 11. 13.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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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여기가 어딘지 지금이 어느 땐지’ 늘 自問自答해야
밀려드는 ‘허영의 시대’ 請求書, 나라 미래 옥죌 것

30여 년 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1918~2019) 전 일본 총리에게 ‘총리 재임 시 일과를 어떻게 시작했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취임하자마자 보좌진에게 매일 아침 미국·소련·영국·독일·프랑스·중국 대표 신문의 1면 머리기사를 번역해 집무실 책상에 올려놓으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요약(要約)아 아니라 전문(全文) 번역을 부탁했습니다. 일본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지 않습니까. 도쿄에 있지만 세계 속에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니 그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네요.”

나카소네는 외교 성과가 두드러진 총리였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론-야스 관계’로 불린 특별한 친교(親交)를 통해 미-일 동맹을 굳건히 하고, 미국 신뢰를 배경 삼아 소련과 북방 영토 반환 교섭을 활발히 진행했다. 총리로서 첫 해외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해 당시 한-일 최대 현안이던 차관 60억달러 제공 문제 해결의 밑돌을 놓았다. 일본이 세계 중심이 아니라는 정확한 상황 판단 위에서 세계와 호흡을 맞춘 것이 외교 성과의 바탕이 됐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 SEC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 의장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왼쪽) 총리, 안토니우 구테흐스(오른쪽) UN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잊으면 방향감각을 잃는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자문자답(自問自答)하지 않는 대통령은 나침반(羅針盤) 없는 배의 선장과 같다. ‘여기가 어디인지’ 묻는 것은 한국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라는 뜻이다. 국가 지도자 머리에 지구의(地球儀)가 들어 있어야 한다.

아데나워(1876~1967) 초대 서독 총리는 13년 재임하는 동안 미국 대통령과 수십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회담 상대였던 미국 대통령 어느 누구도 아데나워가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반드시 통역을 사이에 두고 회담했기 때문이다. 훗날 어느 미국 대통령이 그 이유를 묻자 “자존심 문제가 아닙니다. 내 한마디에 나라 운명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통역을 둬서 단 몇 분이라도 더 생각할 시간을 벌고 싶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묻는 게 지정학적 사고라면 ‘지금이 어느 때인지’ 묻는 것은 역사의 무게와 두께를 느끼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가의 현 단계와 국력(國力)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진다. 이 진단이 정확해야 국가 자원을 시급성과 중요성에 따라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1960년대 일본은 과거 식민지와 피(被)침략 아시아 여러 나라에 배상금 또는 청구권 자금 명목으로 수십억 달러를 제공했다. 그 돈이 경제 부흥의 종잣돈 구실을 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 등이 그 흔적이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은 일본 배상금으로 거대한 운동경기장과 호텔을 지었다. 필리핀·미얀마도 인도네시아와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지도자의 판단 차이가 이런 엄청난 결과를 만든다.

나라가 앓는 마음의 병 가운데 오만(傲慢)과 허영(虛榮)만큼 무서운 게 없다. 오만과 허영은 비슷한 말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병이다. 오만은 남의 눈길에 신경 쓰지 않는다. 추격자·경쟁자의 동향에도 무심해 그들의 다급한 발소리를 듣지 못한다. 패권(覇權) 국가가 걸리기 쉬운 일류병(一流病)이다. 이 병에 걸리면 머지않아 선두 자리를 경쟁자에게 내주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반면 허영은 어떻게든 남의 눈길을 끌려고 하는 병이다. 작은 성공에 들떠 우쭐대는 2류·3류 국가가 이 유혹에 약하다. 서둘러야 할 일은 뒤로 미루면서 체면치레용으로 국가 능력에 부치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한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하산(下山)한 나라는 대부분 허영의 희생자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UN 기후 총회에서 2030년 탄소 감축 목표를 독일·일본보다 높은 40%로 제시해 큰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원전을 축소하면서 2050년엔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도 선언했다. 박수를 보낸 선진국 정상들이 한국 목표가 비현실적이며 어마어마한 희생이 뒤따를 거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대통령 약속을 이행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대통령이 박수 한번 받는 대가(代價)를 기업들이 치르게 된다. 응급실에 실려갈 기업이 수두룩할 것이다. 원전과 탄소 배출 축소 목표의 관계는 어느 프랑스 장관 말대로 ‘이념 문제가 아니라 (더하고 빼는 단순) 수학 문제’다. 허영은 지도자의 덧셈 뺄셈 능력까지 마비시킨다.

그림자가 길어지면 해가 서산(西山)에 걸렸다는 뜻이다. 문재인 시대의 그늘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다. 다음 대통령 선거는 ‘허영의 시대’ 연장이냐 단절이냐 사이의 선택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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