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마음대로 역사 바꾼 시진핑

이벌찬 기자 2021. 11. 13.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중국 영화감독 천카이거는 문화대혁명을 비판한 1993년 영화 ‘패왕별희’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중국의 역사 인식이 자유와 인권에 바탕한 국제사회의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오늘날 천 감독은 중국 역사를 칭송하는 영화를 만든다. 그가 연출한 최신작은 지난 9월 개봉한 6·25전쟁 소재 영화 ‘장진호’.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영화로 중국 인민군의 영웅적인 희생을 강조했다.

9일 중국 베이징의 한 상점에서 고(故)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왼쪽)과 시진핑(習近平) 현 주석의 모습이 그려진 전시용 접시들이 판매를 위해 전시돼 있다. 전날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가장 최근 발간된 중국 공산당 공식 역사서인 '중국공산당 약사'의 총 531페이지 가운데, 4분의 1이 시 주석이 집권한 지난 9년간의 분량이라고 보도했다. 2021.11.10 /AFP 연합뉴스

한때 문화혁명 등 역사적 과오를 인정했던 중국은 이제 자국 역사 미화로 급격히 방향을 틀고 있다. 지난 11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전회)는 이런 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회의는 40년만에 새로운 ‘역사 결의’를 채택하고 지난 100년의 중국사를 중화민족 수천년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시기라고 평가했다. 역사 결의는 향후 중국의 교과서·영화·TV프로그램에서 중국 현대사를 다룰 때 가이드라인이 된다. 중국인의 역사 인식을 규정 짓는 문건인 셈이다.

역사 결의 전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11일 나온 7400자 발표문에서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발표문은 중공 100년 역사를 무결점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문화대혁명이나 1989년 천안문사태 같은 역사 과오는 언급하지 않았다. 1981년 발표된 두 번째 역사 결의가 문화대혁명을 “건국 이래 가장 엄중한 좌절과 손실을 겪게 한 사건”이라 규정한 것과 비교된다.

최근 중국 본토의 홍콩 통치 강화와 대만에 대한 강경 대응도 칭송했다. 발표문은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 이후 홍콩보안법을 제정하고 홍콩 선거제도를 전면 개편한 것에 대해 “혼돈에서 통치로 성공적으로 대전환했다”고 평가했다. 대만에 대해서는 “외부 세력의 간섭에 반대해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서 주도권을 지켰다”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스스로 역사상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계승자이며, 시진핑 사상은 “현대 중국 마르크스주의,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중화문화와 중국정신의 시대적 정수”라고 했다. 시 주석이 내놓은 이번 역사 결의를 종합하면 중공은 무결점이며, 중국 정부의 철권통치는 합법적이고, 중국의 이념은 확고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역사적 평가를 권력 입맛에 맞게 바꾼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이번 역사 결의는 실용주의 노선과 국제사회 규범을 따르는 중국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이다. 향후 시 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낯선 국가가 되고, 중국인들의 역사 인식은 국제사회의 표준과 달라질 것이다. 이런 나라가 우리 옆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