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통하는 이유는?
'한류가 궁금하다면' 취재파일 3편입니다. 앞서 '한류 성공 요인은 한국 정부의 지원 정책'이라는 해외 언론의 반복적인 오답을 짚어봤는데요, 그렇다면 한류 성공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한류 정책'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 한류 연구자로 손꼽히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홍석경 교수 이야기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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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갔습니다.
민주화 바탕 위에 한류 성공
전 세계에서 통하는 한국 콘텐츠의 '보편성'
그런데 한국은 굉장히 빨리 발전하면서 이 문제 안으로 급격하게 진입해서, 빈부 격차를 지금 막 피가 철철 나는 상처로 느끼고 있고, 이걸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거죠. 그만큼 우리 문화산업이 발전했고, 한국인들이 그동안 많이 교육받았고, 특히 한국 시청자들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만들어도 잘 못 만들었으면 절대로 봐주질 않습니다. 한국 대중문화가 지금 이 수준에 다다른 건 몇몇의 산업적 성공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 전체의 문화유산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룬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한국은 선진국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체가 된 거죠.
자신감 좋지만 우월감은 곤란
A. 네. 한국 대중문화 속에 아직 굉장히 많은 문제점이 있고, 그 문제는 사실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라든지, 그런 문제가 다 드러나고 있어요.
스스로 비판할 수 있는 게 문화적 역량
그렇다고 해서 우월감을 가져선 안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인종주의적인 악마를 그대로 살려주는 거거든요. 이미 K팝 문화 안에서 많이 드러나고 있어요. K팝에 인종주의적인 경계 같은 게 생겨나면서, 굉장히 글로벌화하고 있지만, 아시아인이 아니면 인정이 안 된다거나, 어떤 '위계'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산업 종사자들이나 수용자들 모두 조심을 많이 해야 되겠죠.
그래도 저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실수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뭘 잘못했는지 현장에서 배워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K팝 팬덤 문화를 많이 관찰하니까, 그런 사례를 많이 보고 있어요. 코앞의 일에만 관심 있을 것 같은 젊은이들이 팬덤 안에서 서로 대화하고, 먼 곳에 있는 팬들과 싸우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면서, 코스모폴리탄적인 이슈들과 만나고 있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큰 배움이 그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도 한국이 문화적으로 큰 일을 하고 있는 거죠.
한류는 창작자들 피 땀 눈물 덕분...노동 조건 개선해야
A. 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한류는 수용 현상입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식이나 한복 세계화를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특별한 결과가 거기서 나오진 않았거든요. 이제 우리가 그 효과를 알기 때문에 정책을 좀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 거고요. 어느 나라든 자국 문화산업 진흥을 위해 많은 예산을 사용하는데, 중요한 건 어디에 사용하느냐의 문제겠죠. 이 단계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한류가 성공한 것은 정말 한국 대중문화 창작자들의 피 땀 눈물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중문화산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는 일이 있었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젊은 사람의 열정 노동에 기대고 있는 산업입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해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일하고 있죠. (*2011년 젊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고, 이를 계기로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탄생했습니다.) 아까 아이돌 얘기도 했지만, 많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이 영역에 계속 들어와야 좋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죠.
대중문화는 공동의 유산…아카이브 필요
드라마도 그렇죠. 드라마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한국 시청자들이 정말 경쟁적으로 봐줬기 때문이고 우리의 취향이 투사된 결과물인 거거든요. 우리 드라마들은 사전제작이 아니라, 시청자들 반응을 보면서 찍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사전제작을 못해서 좋은 작품을 못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 또 있고.
이렇게 대중문화는 우리의 기쁨과 슬픔과 욕망이 다 투사되어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걸 유산으로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든 잘 보관하고 기록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래서 일반 공중이 접근해서 2차 활용이 가능한 아카이브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산일 뿐 아니라 자산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국가가 투자해서 이런 데이터베이스라든지 아카이빙 작업을 해서, 많은 가치 있는 자료들이 디지털 쓰나미 속에 쓸려나가지 않도록 보존해야 합니다. 가치가 있는 것들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보관해서 후세에 남기고, 동시대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작업이 필요한데,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SBS에서 방영했던 '아카이브K'라는 프로그램 PD한테 들었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한국 대중음악사를 정리하려 하는데 너무나 자료 구하기 어려웠다고요.
A 그렇죠. 다 흩어져 있고, 찾기 쉽지 않죠. 저는 아카이브 작업이 시작되면 구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너무 빨리 발전했기 때문에 50대 후반 60대만 되어도 할 얘기가 많아요. 더 나이 든 분들도 계시고. 우리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면서도 잘못된 우월감이나 '국뽕'으로 가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한 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거든요.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같아요. 아카이브가 중요한 이유가 그거예요.
김수현 문화전문기자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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