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전광판의 '암호 같은 숫자', 어라 저게 뭐지?

최민규 2021. 11. 12. 05: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의 안과 밖] 미국 메이저리그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반도박 정책을 펴왔다. 그런데 지금은 리그가 소유한 스포츠 채널을 통해 포스트시즌 경기 중에 베팅 업체를 홍보하는 것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10월15일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최종 5차전 중계 화면에 ‘스포츠베팅 관련 지표’가 떴다(위).

10월15일(한국 시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LA 다저스는 오라클파크에서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 최종 5차전을 치르고 있었다. 자이언츠 선발투수 로건 웹은 5회 초 2사에서 다저스 8번 타자 크리스 테일러를 풀카운트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경기 다섯 번째 탈삼진이었다.

웹이 테일러를 상대할 때 이 경기를 중계하던 MLB 네트워크 화면에는 박스형 그래픽이 떴다. ‘드래프트킹스│로건 웹 총삼진 O/U 4.5│오버 –155 언더 +125’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암호 같은 숫자들은 스포츠베팅 관련 지표다. 드래프트킹스라는 베팅 업체(북메이커)가 웹의 경기 총삼진에 대한 베팅을 개설했다. 4.5개를 기준으로 이를 넘으면(오버=O) -155 배당률, 넘지 못하면(언더=U) +125 배당률이 적용된다. -155는 155달러를 베팅하면 100달러가 상금, +125는 100달러를 베팅하면 125달러가 상금이라는 뜻이다. 언더가 적중했을 경우 원금과 상금을 더해 225달러를 가져갈 수 있지만, 오버가 됐으므로 원금 100달러를 날리게 된다.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은 전통적으로 강력한 반도박 정책을 펴왔다. 스포츠 도박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승부조작 때문에 리그가 망할 뻔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19년 월드시리즈 승부조작 사건인 블랙삭스 스캔들이다.

그랬던 메이저리그가 지금은 자신이 소유한 스포츠 채널을 통해 포스트시즌이라는 야구 잔치에서 북메이커를 홍보하고 있다. 사정이 달라진 건 2018년 연방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미국은 1992년부터 ‘프로 및 아마추어 스포츠 보호법(PASPA)’을 시행해왔다. 이 법률에 따라 오리건, 델라웨어, 몬태나, 네바다 등 4개 주를 제외하고는 스포츠베팅이 금지됐다. 하지만 2018년 연방대법원은 PASPA가 수정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베팅 금지 여부는 각 주 관할이 됐다. 대법원 판결 이후 세수 확보에 목마른 32개 주가 스포츠베팅을 합법화했다. 주 헌법으로 도박을 금지한 유타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주도 이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다.

프로스포츠 리그도 적극적이다. 야구의 메이저리그는 드래프트킹스를 비롯해 MGM리조트, 팬듀얼, 폭스벳 등 4개 북메이커와 계약관계다. 이들 업체에 공식 로고와 경기 데이터 등을 제공하고 수익 일부를 가져간다. 아이스하키(NHL)와 농구(NBA)도 베팅 업체들과 비슷한 계약을 하고 있다. 미국 최대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NFL)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한동안 스포츠베팅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NFL조차 올해 4월 3개 북메이커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스포츠베팅은 리그에 추가적인 수익을 안겨다 주지만 승부조작 위험성을 높이는 등 부작용도 크다. 하지만 베팅과 스포츠리그의 결합은 이미 대세가 되고 있다. 애덤 실버 NBA 커미셔너는 2018년 5월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모든 것들의 미래(The Future of Everything)’ 페스티벌에서 “앞으로는 경기 중 진행되는 라이브 베팅을 협회가 직접 관여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참석자가 “이유가 뭔가”라고 물었다. 실버의 답은 이랬다. “어차피 다른 곳에서 하고 있지 않은가?”

실버 커미셔너가 언급한 ‘다른 곳’은 합법적인 북메이커를 가리킨다. 어떤 북메이커가 시카고 불스와 보스턴 셀틱스의 경기에 베팅을 개설했을 때 NBA가 이를 막을 권한은 없다. 그래서 제휴업체에 차별적인 서비스와 권위를 부여하고 수익 일부를 가져가는 전략을 택한다.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스포츠베팅 사업을 할 수 있다. 실제 운영은 민간사업자인 ㈜스포츠토토코리아가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수탁운영비로 받는 조건으로 맡는다. 공단은 수익금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조성한다. 이 중 일부가 법령에 따라 한국야구위원회(KBO)를 비롯한 베팅 대상 종목을 주최하는 단체에 배분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공단 외 ‘다른 곳’에서 베팅 사업을 하고 있다. 바로 불법 업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불법 스포츠베팅 비율이 높은 나라로 꼽힌다. 2020년 스포츠토토 매출은 5조원에 약간 못 미쳤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지난해 실태조사에서 불법 스포츠베팅 총매출액 규모는 그 네 배가 넘는  20조5106억원으로 추산됐다.

불법 스포츠베팅 총매출 규모는 20조 넘어

한국에서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스포츠베팅 사업을 할 수 있다. 왼쪽은 서울 시내 한 스포츠토토 판매업소. ⓒ연합뉴스

불법 스포츠베팅이 성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포츠토토가 지나치게 낮은 환급률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환급률은 베팅에 걸린 총금액에 베터가 가져가는 상금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외국 북메이커와 불법 업체의 환급률은 대체로 90% 이상이다. 반면 스포츠토토의 지난해 환급률은 62.3%에 불과했다.

정책 당국은 사행성 방지라는 명목으로 스포츠토토 발매 총액을 규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안정적인 기금 조성을 위해 환급률을 낮추는 정책을 고수한다. 더 높은 수익을 약속하는 불법 베팅이 활성화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 결과 범죄자가 양산된다. 국민체육진흥법은 2012년 개정 이후 불법 스포츠베팅을 한 사람도 처벌하고 있다. 2016년 1~8월 법무부에 접수된 위반 사범은 1만256명이었다. 특별법 범죄 가운데 교통·자동차 관련을 제외하면 근로기준법과 저작권법 다음으로 위반 사범이 많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영기업이 합법 스포츠베팅 시장을 독점하는 홍콩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국영기업인 홍콩자키클럽(HKJC)은 불법 스포츠베팅이 성행하는 이유를 상품 경쟁력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환급률을 높이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 HKJC의 매출은 절반 넘게 증가했고, 그만큼 불법시장 규모는 축소됐다.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