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이야기[이준식의 한시 한 수]<134>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2021. 11.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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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 쏴- 갈바람 속에 정원 가득 피었건만, 차디찬 꽃술과 향, 나비조차 찾지 않네.

꽃철의 거의 끝자락에 매달린 국화의 속성에 착안하여, 시인은 차가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국화의 강인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냈다.

시인은 봄을 주도하는 신이자, 꽃의 신이기도 한 청제(靑帝)가 되어 국화를 위해 백화제방(百花齊放) 속에 오롯이 한 자리를 마련해 주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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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 쏴- 갈바람 속에 정원 가득 피었건만, 차디찬 꽃술과 향, 나비조차 찾지 않네.

언젠가 내가 만약 봄의 신이 된다면, 복사꽃과 한자리에 피어나게 하리라.

(颯颯西風滿院栽, 蕊寒香冷蝶難來. 他年我若爲靑帝, 報與桃花一處開.)

삽삽서풍만원재, 예한향냉접난래. 타년아약위청제, 보여도화일처개.

-‘국화를 읊다(제국화·題菊花)’ 황소(黃巢·820?~884)


노오란 꽃잎을 피우려 안간힘을 다하는 국화를 지켜보면서, 미당(未堂)은 소쩍새의 처연한 울음과 먹구름 속 천둥, 차디찬 무서리를 견딘 인고의 순간들을 기억해냈다. 흐르고 흐르는 개화까지의 시간을 하나씩 되짚으면서 시인은 그 인고의 아픔을 함께 하고 싶었으리라. 뿐이랴. 예부터 국화는 지조의 선비, 고결한 은자의 형상에 비유되곤 했다. 옛시조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내고/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는가./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이정보)가 그런 노래다. 꽃철의 거의 끝자락에 매달린 국화의 속성에 착안하여, 시인은 차가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국화의 강인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냈다.

당 왕조 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된 ‘황소의 난’을 주도했던 바로 그 인물, 황소가 바라본 국화의 풍모는 자못 이질적이다. 그에게 국화는 정원 가득 피었건만 하필이면 차디찬 계절에 꽃과 향기를 드러낸 탓에 나비조차 찾지 않는 외로움의 표상처럼 비친다. 이 소외된 존재를 달래줄 방법이 무엇일까. 시인은 봄을 주도하는 신이자, 꽃의 신이기도 한 청제(靑帝)가 되어 국화를 위해 백화제방(百花齊放) 속에 오롯이 한 자리를 마련해 주겠노라 다짐한다. 농민 반란을 주도한 인물답게 모든 소외된 이들을 제대로 챙겨주겠다는 야심 찬 기개를 암시한 것일까, 아니면 시운을 만나지 못한 울분을 삭이려는 자위(自慰)의 외침일까.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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