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65] 아직 ‘계몽’이 더 필요해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2021. 11. 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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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한 마리에 풀이 등장하는 글자가 있다. 풀로 돼지를 덮는 모습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계몽(啓蒙)의 ‘몽’이다. 뭔가에 가려 밖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래서 어리석음의 몽매(蒙昧), 우몽(愚蒙)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지식이 짧아 사리에 어둡거나, 시야가 가려 그저 어리석은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에 자주 쓴다. 배우지 못한 어린이의 그런 상태를 동몽(童蒙)이라고 적거나, 가려서 어둡게 덮여 있는 모습을 몽폐(蒙蔽)라고 부른다.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상태를 헤쳐 열어주는 작업이 ‘계몽’이다. 때로는 해몽(解蒙), 개몽(開蒙), 발몽(發蒙)으로도 적는다. 혹은 격몽(擊蒙), 훈몽(訓蒙)이라는 말로도 이어져 예부터 무지와 어리석음을 없애려 기울인 노력이 만만찮았음을 알게 한다.

얼마 전 유명한 중국 철학자가 세상을 떴다. 리쩌허우(李澤厚)라는 인물이다. 그는 근래 120년의 중국 역사를 논하며 아직 ‘계몽’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혁명에 작별을 고함(告別革命)’이라는 글에서 그랬다.

그는 계몽이 필요할 때 계몽으로 이어지지 않은 현대 중국사를 안타까워했다. 그 이유로는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의 ‘구망(救亡)’을 꼽았다. 역대 위정자가 모두 위기를 강조하며 백성을 독재의 틀로 단단히 묶었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구호와 선동보다는 사회의 개량(改良)을 향한 이성과 합리를 그는 더 강조했다. 1919년의 5·4운동 등 몇 차례의 계몽에 관한 각성이 위정자들의 권력 의지 때문에 물거품으로 변했던 사실도 비판했다.

요즘 공산당의 공식 행사에서 드러나듯 ‘계몽’ 기운이 감돌았던 개혁·개방 기조는 이제 완연히 꺾였다. 대신 ‘중화 민족의 부흥’이라는 거대한 구호가 자리를 잡았다. 이성과 합리를 향한 중국인들의 모색은 또 멈출 분위기다. 한 철학자의 죽음에서 생각해보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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