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청년의 '간병살인' 재발 막으려면

- 2021. 11. 1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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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 죽음 방치한 우리사회 책임 커
누구나 돌봄 받을 권리 보장돼야

한 청년의 아버지 간병살해가 뜨거운 이슈이다. 재판부는 정상을 참작할 바 없이 의도적 방치에 의한 존속살해로 판단하고 징역 4년을 판결했고 항소도 기각했다. 반면 극심한 생활고에 아버지 간병 부담까지 떠안게 된 22살 청년의 암담한 상황에 공감하며, 그 청년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오히려 영케어러(young carer·젊은 부양자)들이 어린 나이에 겪고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돌봄 부담에 대해 외면하는 우리 사회공동체에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의 진짜 속내를 우리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소위 정말 패륜아일 수도 있고, 그럴 만한 딱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청년의 행위와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청년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왜 그의 아버지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 사회적 부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
청년의 아버지는 지난해 9월쯤 심부뇌내출혈 및 지주막하출혈 증세로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다. 치료비가 부담돼 지난 4월 퇴원시키게 됐고, 아들이 혼자 돌보게 됐다. 팔다리 마비 증상으로 거동할 수 없는 상태에서 퇴원 다음 날부터 처방약을 주지 않고 치료식을 적게 주다 홀로 방치해 5월쯤 숨지게 됐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안타까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치료비 부담으로 4월에 퇴원하게 됐을 때, 퇴원 이유가 경제적 형편 때문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의료비 지원 혜택이나 의료급여 대상으로 자격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못했는가. 또한, 집으로 퇴원하게 됐을 때, 퇴원환자 지역사회 연계 회복재활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처방약과 치료식을 적절히 제공받을 수 있도록 관리되지 않았을까. 다음으로,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퇴원하게 됐을 때, 왜 일상생활을 지원받을 수 있는 장기요양인정신청을 하도록 안내해 장기요양서비스를 받도록 하지 못했는가. 이어, 월세가 밀리고 도시가스와 인터넷이 끊기고 쌀을 사기 위해 친구에게 2만원을 빌릴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왜 긴급복지지원제도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했는가. 끝으로, 퇴원할 때 퇴원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에 의해 적절한 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해 보호자 교육 등을 통해 왜 살펴보지 못했는가.

그러므로 청년 아버지의 죽음에는 사회 책임이 크다. 청년의 아버지는 청년과 별개로 우리가 보호해야 할 시민이다. 가족이 잘 돌보면 살고, 가족이 잘 돌보지 못하면 죽어야 하는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돌봄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여야 한다. 생계가 어려우면 인간다운 최저생활을 시민의 권리로 요구하고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필요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보장 내용이 구비되고, 다양한 제도의 사회적 보장 장치를 사람 중심으로 엮어주는 코디네이션이 원활하게 작동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러지 못했기에 한 청년의 아버지는 죽음을 당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복지사각지대를 발견하지 못하고 놓친 것에 대해 반성의 목소리를 드높인다. 복지사각지대는 주변을 그저 막연히 살피거나 데이터를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 컴퓨팅 작업을 통해 발견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 노출된 상황에서 놓치지 않고 추적, 연계해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경우라면 병원 퇴원환자의 지역사회 연계 체계의 작동이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내가 어려우면 우리 사회는 반드시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사회적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어디선가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고 더 이상 안타까운 비극의 고리를 끊는 길이 될 것이다. 홀로 위기에 두지 않고 반드시 어디선가 나타나 지켜주는 ‘짱가’가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대통령 후보를 기대한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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