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민주주의

한겨레 2021. 11. 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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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을 방어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일상 업무에 관한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들리는 이 말은 100인 이상 기업의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접종 또는 검사를 의무화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명령에 사법부(제5연방순회항소법원)가 제동을 건 뒤 백악관에서 한 말이다.

물론 권한 문제가 다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법부는 태평하게도 권한 문제로 좁게 파악하여 연방정부의 명령 시행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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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크리틱] 정영목|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정책을 방어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일상 업무에 관한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들리는 이 말은 100인 이상 기업의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접종 또는 검사를 의무화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명령에 사법부(제5연방순회항소법원)가 제동을 건 뒤 백악관에서 한 말이다. 내가 본 <엔피아르>(NPR) 기사는 방금 인용한 말 몇 줄 위에서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니까 위의 인용은 출전 메시지인 셈이다.

이 명령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8400만명이다. 이 명령 시행이 중단됨으로써 이들의 안전이 위태로워질 수 있고, 나아가 백신 접종률 증가 속도가 늦어져 국민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주들의 문제 제기는 연방정부가 그런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권한 문제가 다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법부는 태평하게도 권한 문제로 좁게 파악하여 연방정부의 명령 시행을 막았다. 이 문제와 관련된 소송은 다른 항소법원들에도 걸려 있는데, 결국은 대법원까지 먼 길을 갈 것이란 예측이다. 이 비상한 상황에서 인명이 걸린 문제를 놓고 권한을 따지느라 시간을 물 쓰듯 쓰고 있다니!

그러나 백악관이 한 말은 방금 들은 대로다. 고구마에 목이 메는 느낌이다. 싸우는 거라면서! 그 뒤에 이어진 말도 행정부의 권한과 이번 명령의 목적을 강조하는 정도다. 따라서 이 말에 선동되어 바이든 지지자가 트럼프 지지자를 흉내 내어 법원에 난입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하우스 오브 카드>가 아니라 <웨스트 윙>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트럼프처럼 환상의 사이다 쇼 무대를 따로 운영하지 않는 한, 꾸역꾸역 늘 하던 싸움을 해나가는 것 외에 행정부가 달리 할 게 뭐가 있을까? 트럼프의 사이다는 쓰린 궤양 외에 무엇을 주었을까? 그렇다면 백악관의 발언은 그 나름으로 비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어차피 고구마이므로.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보다 지혜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나보다 정치적 판단이 뛰어난 사람을 많이 만났고, 세상이 나아지게 하는 일에 나보다 애쓰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선거 때면 그들이나 나나 똑같이 한 표를 갖는다. 이게 공정하고 효율적일까? 플라톤이라면 입에 거품을 물 것이다. 그럼 그들에게 천 표가 가고 나에게 반 표가 오는 게 공정하고 효율적일까? 머릿속에서 어떤 답이 나올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세상은 1인 1표를 향해 움직여왔다. 엄청난 땀과 피를 쏟아부어 참정권을 향한 길목을 가로막던 핏줄 재산 성별 인종의 구분을 없애버렸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확장은 비효율의 확장이기도 했다. 고구마가 점점 커지는 과정이었다. 다섯명이 결정하던 걸 100명이 결정하고 함께 움직인다고 생각해보라. 적어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에서는 효율이 최고의 가치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더디고 답답한 과정이다. 이는 우리 삶의 반영이기도 하다. 왜 민주주의 이행 과정이 이렇게 답답한지 보려면 그냥 자기 삶을 보면 된다. 왜 민주주의에서 사이다를 원하게 되는지 보려면, 왜 내가 내 삶에서 뭔가 화끈한 거, 한 방에 역전할 거, 나를 옥죄는 이 모든 걸 단칼에 끊어줄 거를 찾는지, 소소하게는 새벽 축구 중계에서 극장 골이 터져주기를 바라는지 보면 된다. 그런 기대를 정치에 투사할 때, 또 그 투사를 받아주는 정치적 반사체가 득세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위기에서 그간 잊고 살던, 고구마 속에 감추어져 있던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들이 드러나곤 한다. 그 또한 삶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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